일본의 청년층이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면서 근로시간이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과로사(過勞死) 문제로 악명 높았던 일본의 직장문화가 세대교체와 함께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8일 리크루트웍스연구소의 다카시 사카모토 연구원이 발표한 '일본의 진정한 경제'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의 연간 근로시간은 2000년 1839시간에서 2022년 1626시간으로 11.6% 감소했다. 이는 유럽 국가들과 비슷한 수준이다.
특히 20대 남성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이 2000년 46.4시간에서 2023년 38.1시간으로 크게 줄었다. 호카이도분쿄대학의 마코토 와타나베 교수는 "젊은이들이 회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지 않겠다고 결심했고, 이는 매우 현명한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이러한 변화는 세대 간 가치관 차이에서 비롯됐다. 경제성장과 고용안정을 위해 장시간 근로를 감내했던 부모 세대와 달리 젊은 세대는 워라밸을 우선시하며 과도한 근무조건을 거부하고 있다.
와타나베 교수는 "1970~80년대에는 일하면 일할수록 더 많이 벌 수 있었고, 그만큼 고된 노동이 가치가 있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설명했다.
일본의 심각한 인력난도 젊은 직원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기업들은 인재 확보를 위해 대학생들이 졸업하기도 전에 영입에 나서고 있다. 과로나 저평가를 느끼는 직원들은 그 어느 때보다 쉽게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수 있게 됐다.
임금 상승도 눈에 띈다. 20대의 임금은 근로시간이 줄었음에도 2000년 이후 25% 상승했다. 무급 초과근무를 요구하는 기업도 감소했다.
도쿄 주오대학의 이즈미 쓰지 교수는 "현재 상황이 매우 불안정해 젊은이들은 미래에 대한 꿈을 갖기 어려워하고 있다"며 "큰 포부는 잠시 접어두고 일상생활의 안정성만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장시간 근로를 통해 경력을 쌓아온 50~60대 관리자들은 젊은 동료들의 과로 민원을 우려해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쓰지 교수는 지적했다.
한편 일본의 과로사 문제는 여전히 심각한 수준이다. 정부 보고서에 따르면 과로 관련 자살자 수는 2021년 1935명에서 2022년 2968명으로 증가했다. 2023년에는 뇌졸중이나 심장마비 등 과로로 인한 건강 문제로 54명이 사망했으나 전문가들은 실제 수치가 이보다 훨씬 높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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