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2019년 “나는 비트코인의 지지자(big fan)가 아니다”라고 밝혔지만 지금 그의 태도는 180도 달라졌다. 신시아 루미스 미국 상원의원은 미국 정부가 향후 5년간 매년 20만 개씩 비트코인을 사자는 법안을 발의했다. 미국의 일부 주정부도 비트코인을 전략자산으로 비축하고 결제통화로도 사용하자는 움직임이다.
많은 이들이 비트코인을 ‘디지털 금’이라고 주장하며 가치 상승을 정당화한다. 비트코인은 2100만 개까지만 발행 가능하다. 금처럼 희소성이 있다. 보관 편의성 등 금과 비슷한 부분도 있다. 문제는 유용성, 즉 본질 가치다. 금은 빛나서 갖고 싶다. 또 전도성이 뛰어나 금속으로서 매력도 있다. 금과 매장량이 비슷한 금속이 많지만 귀금속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본질 가치에서의 차이 때문이다.
비트코인의 본질 가치는 ‘블록체인’ 기술을 시장에 처음 소개했다는 상징적 의미다. 그러나 비트코인이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특허를 갖거나 로열티를 받는 것은 아니다. 특히 거래가 너무 느려 화폐로서 가치가 떨어진다. 비트코인 블록체인은 1초에 7건 거래된다. 비자 네트워크가 1초에 6만 5000건 거래를 성사시키는 것에 비하면 실제 사용은 어렵다.
솔라나·리플 등 기능성 코인들은 블록체인에 인공지능(AI)의 진화된 기술을 접목시켜 거래 속도나 편의성을 끌어올린다. 이런 추세가 거듭될수록 비트코인은 과거의 유물로 전락하며 본질 가치를 잃어버릴 수 있다. 비트코인이 디지털 금으로 남아 있으려면 가명의 사토시 나카모토가 다시 일을 해야 한다. 그가 블록체인 관련 신기술을 지속적으로 소개해야 그 본질 가치가 인정될 것이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비트코인의 투자 시기는 지금이다. 아직 최초의 블록체인이라는 상징적 의미가 살아 있고 가장 먼저 펀드 상품화돼 가상자산 시장에서의 기득권도 있다. 정치인들은 금융 상품의 가치를 훼손하기 싫어한다. 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장은 비트코인에 우호적인 환경이지만 시장이 비트코인을 계속 곱게 봐줄지는 의문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비트코인의 가격을 올리고 싶어하나. 사토시 나카모토와 함께 비트코인 개발에 참여했고 그 거래 플랫폼을 만든 사람들이 모두 미국인이다. 그들은 대가로 받았던 비트코인 가운데 소량은 팔았겠지만 여전히 절대다수가 미국인들 소유로 남았을 것이다. 비트코인 가격이 상승할수록 ‘미국인들은 부자’라는 인식과 함께 미국의 민간 자산이 증가하며 달러 가치를 지지해줄 수 있을까. 즉 미국 정부가 끌어올린 비트코인의 가치를 다른 나라들도 인정할 것이냐는 질문이다.
과거 폴 크루그먼이라는 경제학자가 미국 정부의 빚을 탕감하기 위해 백금 주화 하나를 만들고 그 위에 ‘1조 달러’라고 쓰자는 건의를 했다. 그 주화는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희귀한 것이므로 가치가 있을 것이라는 헛된 주장이었다. 비트코인이 그 기념주화와 뭐가 다른가.
디지털 세계를 열어가는 기능성 코인들이 여럿 있다. 그들은 희소성은 없지만 사용자들을 끌어모으며 가치를 높여간다. 비트코인도 거져 먹을 수는 없고 가치에 합당한 기여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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