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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 떠나는 이가 남긴 데이터

■박동휘 디지털편집부 차장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이후 유족들은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며 또 다른 고통을 마주했다. 고인의 스마트폰에 저장된 연락처를 확보하지 못해 지인들에게 부고를 제대로 전하지 못할 상황에 처한 것이다. 정보기술(IT) 기업들은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정보 제공을 거부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중재에 나서며 유족들은 뒤늦게 연락처를 확보했지만 이번 사례는 우리 사회가 디지털 유산 상속 문제를 더는 미룰 수 없음을 보여줬다.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은 ‘살아 있는 개인’의 정보만을 보호 대상으로 규정한다. 이 때문에 IT 기업들은 고인의 디지털자산 처리에 보수적인 태도를 보인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계정 정보를 ‘일신전속적 권리’로 규정해 유족에게도 제공하지 않는다. 계정 삭제나 공개 자료에 한해서만 제한적 접근을 허용할 뿐이다.

이러한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5년 전 천안함 희생자 유족들도 같은 아픔을 겪었다. 당시 유족들이 희생 장병의 미니홈피 자료를 요청했으나 싸이월드 측은 관련 규정 부재를 이유로 거절했다.

2022년 싸이월드가 ‘디지털 상속권 보호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희생 장병 46명 중 34명의 유족이 서비스를 신청했으나 9명은 계정 비공개 설정을 이유로 단 한 장의 사진도 받지 못했다.

반면 해외는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미국은 2014년 ‘디지털자산에 대한 신탁자의 접근에 관한 통일법’을 제정해 47개 주에서 시행 중이다. 이 법은 고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면서도 디지털자산의 효율적 관리를 위해 신탁자에게 적절한 권한을 부여한다.



독일 연방 대법원은 2018년 페이스북 계정도 상속 대상이라는 판결을 내리며 디지털 유산 상속의 선례를 남겼다.

이러한 법적 기반 위에서 글로벌 IT 기업들은 다양한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구글은 이용자가 사전에 지정한 사람에게 계정 관리 권한을 부여하는 ‘휴면 계정 관리자’, 애플은 최대 5명까지 지정할 수 있는 ‘유산 관리자’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마이크로소프트도 법원 명령이나 관련 법률에 따라 계정 접근 권한을 부여하는 등 적극적으로 디지털 유산 관리에 나서고 있다.

더는 미룰 수 없다. 지난 21대 국회에서도 ‘디지털유산법’이 발의됐으나 임기 만료와 함께 폐기됐다. 옛말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지만 21세기 인류는 죽어서 데이터를 남긴다. 우리의 삶이 온라인에 기록되는 시대, 사랑하는 이의 마지막 디지털 흔적조차 찾지 못하는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루빨리 제도적 틀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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