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여명] '탄핵의 강'보다 거친 '계엄의 바다'

손철 정치부장




탄핵의 강을 건넌 줄 알았던 대한민국이 ‘계엄의 바다’에 빠졌다. 8년 만에 직면한 대통령 탄핵은 갈 길이 보였지만 45년 만에 날벼락처럼 떨어진 비상계엄은 나침반조차 찾기 어려우니 무리는 아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찾아와 국민을 처단하겠다는 살벌한 계엄 포고령을 빨리 잊고 싶은, 지우고 싶은 마음도 있으리라. 그러나 지금 마주한 탄핵 정국의 혼란이 시작된 12·3 계엄령을 외면하는 순간, 거친 계엄의 바다를 온전히 건널 도리는 없다.

대한민국이 수십 년간 쌓아온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한번에 무너뜨릴 뻔한 위헌적 계엄을 윤석열 대통령은 왜 그리도 어이없게 선포했을까. 특검의 칼날이 김건희 여사를 향해 날아드는 것은 시간문제여서 다급했을까. 자신의 실정이 아닌 부정선거 때문에 4·10 총선에서 대패한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어서일까. 정치 브로커 명태균에게 놀아난 실상이 만천하에 공개되는 것이 두려웠을까. 정치 초년병으로 손바닥에 왕(王) 자를 쓰고 나가 극적으로 대권을 잡은 것에 혹해서 또 무속의 힘에 기댄 것일까. 어떤 이유에서건 계엄 요건과 절차를 무시한 그의 초법적 계엄은 용납될 수 없다. 국회에 군을 투입하고 일체의 정치 활동을 금지해 모든 권력을 독점하려 한 그의 위헌적 계엄은 마땅히 처벌돼야 한다.

계엄 해제를 주도하고 열흘 만에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을 이끌며 순항하던 더불어민주당은 해가 바뀌면서 기우뚱하고 있다. 내란의 엔진을 달고 계엄의 바다를 편하고 빠르게 건너려다 역풍을 맞은 것이다. 경제는 여전히 계엄 후폭풍에 깔려 있고 국민은 계엄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민주당은 그저 ‘조기 대선’에 눈이 뒤집혀 있는 듯 보이니 지지율이 급전직하한 것이다. 민주당은 심판대에 선 탄핵의 정당성을 차근차근 알리고 진실을 파헤쳐야지 ‘불법 계엄=내란’이라는 선정적 공식을 앞세워 단숨에 권력을 잡으려다가는 탄핵의 강에서 배가 뒤집힐 수 있다.



탄핵 정국에서 국민의힘은 극우 지지자들의 무등을 타고 불법 계엄을 6시간짜리라고 애써 축소해 계엄의 바다를 메울 수 있다고 여기는 듯하다. “내가 계엄을 했느냐”는 한동훈 전 대표의 억울한 심정을 친윤을 필두로 한 국민의힘 의원 다수가 외마디 비명으로 끝장냈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체포영장 집행을 저지하려 “대통령을 관저에서 수갑 채워 끌고가는 것은 국격을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했는데 국격을 아프리카의 독재국가 수준으로 망가뜨린 불법 계엄의 주동자가 누구인지 먼저 묻지 않을 수 없다.

권성동 원내대표 역시 김정원 헌법재판소 사무처장이 국회에서 비상계엄 포고령에 대해 “현행 헌법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답하자 “공정성에 대한 심각한 훼손”이라며 불법 계엄을 ‘입틀막’하려 했다.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를 지내고 헌재에서 10년 넘게 헌법을 연구한 김 처장이 12·3 계엄에 상식 수준의 평가를 한 것조차 덮으려 하다니 참담하다. 국민의힘은 8년 전 탄핵으로 폐족이 된 트라우마에 갇혀 윤 대통령 방탄에 나서고 있는데 이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대선 가도에 꽃길을 깔아주는 일이다.

윤 대통령은 국무위원들이 반대한 비상계엄을 밀어붙이다 국회에서 물거품이 되자 ‘경고성’이었다고 궤변을 늘어놓았다. 무능과 아집이 겹쳐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경고장을 날린 셈이다. 미국은 “계엄이 잘못됐다”고 비판하며 ‘중대 우려’를 표했고 국무부 부장관이 나서 윤 대통령의 ‘심각한 오판’을 힐난했다. 한반도에 천금보다 귀하다고 여겨지는 한미 동맹에 균열을 초래한 것이다. 계엄 이후 하루에 10원씩 치솟은 고환율로 외국인 투자는 떠나고, 물가는 불안하고, 소비심리는 얼었다. 연말연시 대목을 기대한 상인들은 취소 주문이 폭주해 길거리에 나앉을 판이다. 계엄 한 달여 만에 국내총생산(GDP)이 수조 원 이상 증발했다는 보고서도 나왔다.

국가 위기를 조장하고 국민의 짐이 된 윤 대통령은 더 이상 비겁하게 경호처의 뒤에 숨어서는 안 된다. “한국은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강해졌다”는 조셉 윤 주한미국 대사대리의 덕담이 현실화하려면 윤 대통령이 약속한 계엄의 법적·정치적 책임이 하루빨리 이행돼야 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경 마켓시그널

헬로홈즈

미미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