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협상력을 확보하기 위한 방편으로 전 세계에 보편관세를 부과했던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과 같은 길을 갈 것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트럼프는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과 비체결국 모두에 보편관세를 매길 것으로 보이며 한국도 대상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미국 워싱턴DC에 자리한 싱크탱크 우드로윌슨센터의 트로이 스탠거론 한국역사·공공정책연구센터 국장은 10일(현지 시간)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닉슨 전 대통령은 미국 협상력 확보를 위해 보편관세를 부과했다”며 “당시의 지정학적 상황은 지금과 다르지만 트럼프가 같은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고 밝혔다. 미 워싱턴 내 대표적인 한국 전문가 중 한 명인 스탠거론 국장은 “트럼프 행정부가 1기 때 배운 교훈 중 하나는 전통적인 무역 도구를 사용하면 무역적자 감소와 제조업의 미국 복귀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이라며 “트럼프 2기 때는 (비전통적 무역 도구인) 보편관세를 도입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닉슨 전 대통령이 했던 것처럼 보편관세는 협상 가능한 성격일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닉슨 전 대통령은 미국의 연간 무역수지가 적자로 돌아서자 1971년 8월 미국의 모든 수입품에 10%의 보편관세를 부과했다. 이른바 ‘닉슨 쇼크’였다. 그러면서 미국산 제품의 수출 경쟁력 확보를 위해 각국에 환율 평가절상을 압박했고 결국 그해 12월 일본·독일 등 10개국으로부터 환율 평가절상 약속을 받아낸 후 보편관세를 철회했다. 트럼프 역시 보편관세를 부과해 각국과의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려 할 것으로 관측된다.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스탠거론 국장은 트럼프 1기 때 애플이 중국에서 생산된 부품 등의 관세를 면제받았던 사례를 예로 들었다. 2019년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부품을 중국에서 들여오는 상황에서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로 삼성전자 등과의 경쟁에서 불리한 상황에 처했다”며 트럼프를 설득했고 결국 애플의 부품은 관세 면제 조치를 받았다. 스탠거론 국장은 “한국 기업들이 미 의회와 트럼프의 내각 구성원들과 관계를 맺고 가능하면 트럼프와도 직접 만나 한국의 대미 투자가 얼마나 미국의 경제성장에 기여했는지 또 한미 관계가 양국 모두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의 관료들이나 국회의원들은 트럼프 측과 접촉해 미국의 대(對)중국, 대(對)러시아 정책 등에 한국의 이익이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가령 한국 입장에서 북한에 대한 러시아의 군사 기술 이전을 막는 것이 안보 측면에서 중요하므로 미국에 러북 기술이전을 막는 것이 왜 한미 이익에 부합하는지를 적극적으로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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