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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 [김다은의 웹소설] <19회>

로이터연합뉴스




19. 두 종류의 자랑거리

하얀 죽 한 사발이 가만히 테이블 위에 놓였다. 고개를 드니, 어머니였다. 우리가 꼿꼿하게 토론하는 모습을 멀찍이 바라보고 계셨는데, 어느새 나에게 먹일 죽을 준비한 모양이었다. 나는 1주일 동안 음식도 물도 거의 마시지 않은 상태였다. 입관이 끝난 뒤에야 겨우 일회용 면도기로 수염을 깎으려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는 거울 앞에서 헉 놀라서 물러났다. 영화 ‘빠삐용’에서, 탈옥을 감행했다가 독방에 갇혀 햇빛도 없이 바퀴벌레를 잡아먹으며 견디다가 축 늘어져 끌려 나오던 스티브 맥퀸의 창백하고 메말라버린 얼굴을 닮은 남자가 거울 안에 서 있었다. 육체적으로도 굶주린 상태였지만, 매일 받던 세상의 관심과 칭찬과 자랑거리의 자양분이 공급되지 않아서 정신도 살아있다고 말할 수 없었다. 다시 거울을 보니, 염을 한 아버지의 하얀 얼굴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가 죽어버렸다는 생각이 얼핏 스쳤다. 거울 속의 나를 다시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께 고분고분 말했다.

“좀 식으면 먹도록 할게요. 어머니도 좀 쉬도록 하세요.”

여자와 토론을 하자, 내 승부사 기질이 식욕까지 조금씩 깨우고 있었다. 조문객들은 장례식장 음식을 먹으면 코로나에 당장 걸릴 것처럼 아예 식당에 들르지도 않았고, 그래서 음식을 먹어야 한다면 장례식 식당이 가장 안전할 정도였다. 그렇다고 생판 모르는 여자를 앞에 두고 죽을 먹을 순 없었다. 그러고 보니 생판 모르는 여자와 이렇게 성경을 토론하게 된 상황이 이상했다. 누가 저 하얀 가죽 표지의 성경을 나에게 전하라고 했는지 궁금해졌지만 묻지 않았다. 대신에 여자와 토론을 계속 이어가고 싶은 욕심에 미처 풀지 못한 의문을 말했다.

“대담에서 프랑스 작가가 말했던 대응 문구 기억하시죠?”

표지 문구를 이해하려면 대응 문구도 함께 이해해야 한다고 프랑스 작가가 주장했고, 그 두 문구는 다시 모순적인 관계여서 난감했었다. 여자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대응했다.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와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기 위한 것이다’ 사이의 모순을 말씀하시는 거죠?”

여자는 내 속을 환히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나는 두 문장의 모순 관계를 설명해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성악을 전공한 여자에게는 무리였다. 세계적인 작가와의 대담에서도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을 이 여자가 쉽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내가 침묵을 지키자 여자가 차분하게 말했다.

“제 친구가 출판사의 부탁으로 어린이 성경책을 편집한 적이 있어요. 내용은 읽기는 해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고 고백한 적이 있거든요. 대담자 님이나 김아리랑 팀장님뿐만 아니라, 책을 전문적으로 편집하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예요. 성경이 어려운 이유는 인간끼리 소통하기 위한 언어가 아니라 신과 소통하기 위한 영의 언어라는 점이에요. 성령없이 영의 언어를 이해하기가 어렵답니다.”

“…….”

“지금은 아무리 설명해봤자 이해하기 어려우실 테니, 아예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성경은 책 전체가 모순 언어예요.”

여자는 생각했던 것보다 화술이 좋았다. 두 문장의 모순으로 끙끙대는 나에게, 성경 전체가 모순 언어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람이 신의 언어를 이해한다는 말인가. 나는 여자의 대범한 표현에 조금 매료되어 말했다.

“어째서 그런지 설명해보세요.”

“신의 언어를 세상의 언어로 이해하려니 전체가 모순일 수밖에 없지요.”

“예를 들어보세요.”

성악을 전공한 여자의 리듬감이 있는 목소리가 듣기가 좋았다.

“대담자 님은 죄인이신가요?”

“뭐,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랬다면 감옥에 있겠지요.”

“대담자 님이 죄인이 아니라고 간단하게 대답한 것은 살인이나 도둑처럼 사회적인 범죄인 크라임(crime)을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이잖아요. 그런데 성경에 의하면 대담자님은 죄인이세요. 본인이 아니라고 하고 법도 그렇지 않다고 하는데 당연히 모순이잖아요.”

“…….”

“성경에서 말하는 죄인은 아담 이후의 모든 인간에 해당해요. 아담 한 사람이 죄를 지어 그 후 모든 인간이 하나님과 분리된 상태가 된 죄를 씬(sin)이라고 해요. 이처럼 아담 한 사람에 의해 모든 인간이 죄인이 되었지만, 다시 예수님 한 분에 의해 모든 인간이 새 생명을 얻고 하나님과 다시 연합할 수 있게 되었어요.”

“더 쉬운 예를 들어보세요.”

여자는 처음으로 갸웃하는 표정이었고, 눈망울이 커졌다.

“다이아몬드로 예를 들어볼게요. 성경이 쓰여질 당시에는 금강석이라고 불렀죠. 흔히 다이아몬드라는 세상의 가장 아름답고 단단한 보석으로 여기잖아요. 성경에서는 금강석을 마음이 굳어서 말씀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닫힌 마음을 비유하기도 해요.”



그런 사람이 나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본능적으로 반격했다.

“시인들도 얼마든지 그렇게 비유할 수 있죠.”

“성경의 언어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어요. 믿음을 가진 인간이 자랑할 수 있는 가장 큰 것은 재물이나 다이아몬드가 아니거든요. 유일한 자랑거리는 예수님을 통해 새 생명을 얻고 하나님을 다시 만난 거예요. 하나님을 모르면 자신의 재물이나 노력으로 얻은 것들을 세상에 자랑하며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인간이 노력으로 이룬 재물이 죄라는 뜻인가요? 세상 사람의 능력이나 재능이 하나님 앞에서는 죄가 된다는 뜻인가요?”

“물론 아니에요. 그리스도인이 되면 자신의 재능이 어디서 왔는지를 알게 된다는 뜻이에요. 다윗 아시죠?”

“하나님이 가장 사랑한 이스라엘의 왕이자 예수님이 다윗 왕의 후손이잖아요.”

“성경을 상당히 잘 아시네요. 본래 다윗은 당시 천한 직업이었던 양치기였잖아요. 다윗은 양들을 불러 모으거나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 수금을 연주하곤 했어요. 수금이 다윗의 세상적인 재능이었던 셈이죠. 그런데 당시 사울 왕이 나쁜 영에 사로잡혀 병이 들게 되고, 다윗의 수금이 유명해서 궁궐로 들어가 수금으로 그 영을 쫓아내고 왕의 사위가 되어요. 게다가 다윗은 새벽에 일어나 하나님과 교제하거나 찬양할 때나 곧잘 수금을 연주하길 좋아했어요. 다윗은 나중에 사울에 이어 왕이 되지요. 양치기 다윗을 왕으로 만든 수금의 재능은 어디서 왔을까요?”

“양을 지키려고 수금을 많이 연습했겠지요.”

“그렇다면 양을 지키는 수금이 어떻게 왕의 병까지 고칠 수 있었을까요? 다윗은 수금의 재능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믿었어요. 그래서 수금은 양치기 직업을 수행할 때 꼭 필요한 도구였겠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어서 사람을 위로하고 치료하는 기술이 되었고, 특히 새벽에 주님을 찬양하는 아름다운 악기로 변하게 된 거예요. 대담자 님의 놀라운 언어 감각이나 대담 능력도 어디서 왔는지 생각해보시면 좋을거예요.”

성경은 수천 년 전의 책이었다. 인간이 수금으로 양을 몰지도 않으며 그것으로 치료를 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현 상황에서 나의 대담 능력을 칭찬받자 도리어 조롱처럼 느껴졌다. 칭찬이 모멸감으로 느껴지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나도 모르게 빈정거리는 어투가 나왔다.

“현대에는 과학이 워낙 발달해서 인간의 능력이 점점 신을 닮아가는 정도죠.”

“인간의 과학이 대단한 것 같지만, 성경 속 사건과 비교하면 겨우, 바벨탑 정도예요. 구약에서 인간들이 바벨탑이 쌓게 된 계기가 과학적 성과에 의해 벽돌을 ‘발명’했기 때문이에요. 흙이 아니라 벽돌이 가능해지자 이 엄청난 과학적 성과를 통해 하늘에 닿을 탑을 쌓을 수 있다고 여겼죠. 탑을 쌓아 하나님께 도달할 수 있다고 하나님께 도전했던 사건이에요. 인간의 교만이 자라나서 그 탑에 공헌한 인간의 이름을 벽돌마다 새기기로 했던 거예요. 우주에 탐사선을 띄워 보내는 현대 인간의 과학이나 발명이 창조주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그 수준이에요.”

성악을 전공한 여자가 이렇게 말을 잘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나의 의문이나 질문에 막힘이 없어서 이런 언어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했다. 여자는 모순의 언어를 설명하면서도 전혀 말에 모순이 없었다. 나는 거의 식은 하얀 죽을 내려다보았다.

“저에게 성경을 읽으라면 무엇부터 읽으라고 권해주시겠습니까.”

육체적 시장기와 성경을 알아보고 싶은 시장기가 동시에 느껴져 무심코 말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의 소제목들은 왕의 이름이나 업적을 드러내는 제목은 없어요. 창세기부터 구약은 거의 하나님의 언약이나 능력을 그리고 시편도 인간의 재능으로써의 시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에요. 신약은 선지자들의 이름으로 되어 있어요. 요한복음, 사도행전처럼. 성경을 읽기 전에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이면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거예요.”

“성경의 소제목들은 선지자들의 이름뿐만 아니라 지역 이름으로 되어 있는 것도 많지요. 가령, 고린도라거나…….”

“아! 좀 전에 말한 대응문장이 고린도 전서 9장 19절이에요. 대담이 끝나고 제가 확인했거든요. 고린도 전도와 고린도 후서는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서신들이에요. 어떤 이들에게는 고린도가 자신의 재능을 자랑하는 장소가 될 수도 있겠지만, 바울에게는 자기를 낮추고 주님을 자랑하여 복음으로 지경을 넓혀갈 땅이었어요. 그래서 바울이 이같은 대응 문구를 말한 거예요.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기 위한 것이다.’ 더 많은 사람을 얻는다는 것은 인기나 부릴 종을 얻겠다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할 사람을 얻는다는 것이에요. 예수님의 새 생명을 전하기 위해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도 좋다는 뜻이예요.”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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