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에 상장된 주식의 시가총액이 지난해 249조 원이나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한국CXO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상장사 2947곳의 시가총액(우선주 제외)이 지난해 1월 2일 기준 2503조 원에서 올해 1월 2일 2254조 원으로 9.9% 감소했다. ‘대장주’ 삼성전자를 비롯해 상장기업 10곳 중 7곳의 시가총액이 줄어들었다. 블룸버그통신이 집계한 아시아태평양 19개국 73개 주가지수 수익률 순위에서 코스피(-9.6%)는 65위, 코스닥 지수(-21.7%)는 최하위인 73위를 기록했다. 반면 인공지능(AI) 반도체·로봇 관련 기업이 즐비한 미국 나스닥과 대만 자취엔지수는 각각 33.6%, 29.3% 상승했다.
정부의 밸류업 정책 추진에도 외려 국내 증시가 더 부진한 성적을 기록한 것은 기업들의 경쟁력과 미래 성장 비전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AI 반도체 등 첨단 기술에서는 미국·일본·대만에 뒤처지고, 기존 주력 산업인 배터리·철강·화학 분야에서는 중국에 추격당했다. 특히 중국은 가격 경쟁력뿐 아니라 기술력까지 높여 한국 제조업을 위협하고 있다. 기업 가치를 냉정하게 평가하는 주식시장 참여자들이 한국 기업들의 현실을 직시하고 주식 투자를 외면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연말 계엄·탄핵 정국으로 인한 정치적 불확실성 고조와 원화 가치 하락은 외국인 자금 이탈을 가속화했다. 특히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예고하고 있는 글로벌 무역 전쟁은 대미·대중 수출 의존도가 매우 높은 우리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
기업의 본질적 경쟁력 회복 없이는 한국 증시의 장기적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 연기금을 통한 유동성 공급이나 기업들의 배당 확대는 일시적 주가 상승을 이끌 수 있으나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재도약을 견인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첨단 기술 기업과 혁신 기업을 적극 육성하려면 투자와 경영을 제약하는 노동 규제를 비롯한 각종 규제 사슬의 혁파가 시급하다. 아울러 미래 기술 투자 지원을 위한 세제 혜택과 파격적인 보조금도 필요하다. 증시 활성화를 위해서는 혁신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는 역동적인 경제 환경 조성이 선결 과제다. 정부와 정치권은 규제 완화를 비롯한 구조 개혁에, 기업은 초격차 기술 확보와 혁신 역량 강화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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