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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일 칼럼] 노동시장을 교란하는 법과 판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통상임금 판결' 임금비용 불확실성 높여

기업 자동화 가속, 일자리만 줄어들어

노사 자율계약에 법의 개입 최소화돼야





지난해 12월 대법원은 통상임금에 포함되는 급여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취지로 기존 판례를 뒤엎는 판결을 내렸다. 사용자들은 노동비용이 상승해 경영이 악화되고 일자리가 위축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으며 실제 이러한 비용 부담은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반대로 통상임금의 범위를 더 좁히는 판결이 나왔더라도 문제가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근로자의 소득이 갑자기 하락해 노동시장에 또 다른 충격을 줬을 것이기 때문이다.

통상임금은 연장근로수당의 법정 기준인 만큼 정확한 법리 해석의 중요성이 높다. 그러나 위에서 보듯 노사가 모두 동의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판결은 아예 불가능하다. 그렇듯 이번 판결이 갖는 문제의 본질은 법리나 결론에 있는 것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이런 판결이 경제의 교란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근로계약을 맺고 고용관계를 유지해 온 노사가 계약을 체결할 당시 자신들의 합의 내용이 향후 이런 판결로 뒤집어질 가능성이 있다고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메뉴판 가격이 6000원이라는 것을 보고 김치찌개를 주문한 손님이 식사하는 동안 느닷없이 법원이 메뉴판 가격은 김치찌개만의 가격으로 해석돼야 하므로 공기밥은 따로 1000원을 내야 한다고 판시한 것이다. 주인이야 추가 소득이 생겼지만 손님은 이제 메뉴판을 믿고 주문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 가격이 올랐으니 함부로 음식점에 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음식점 매출은 줄 것이고 주인은 장사를 접거나 손님을 끌기 위해 메뉴판 가격을 5000원으로 내리겠지만 앞으로 또 무슨 판결이 나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손님은 여전히 식당을 꺼릴 것이고 결국 매출은 그전만 못할 것이다.



이렇듯 판결 내용 그 자체가 아니라 계약이나 거래 내용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법을 만들어 사법부 판결이 고용관계에 교란 요인으로 작용하도록 허용하는 법체계가 문제인 것이다. 근로계약을 맺는 노사가 근로에 대한 소정의 대가로 주거나 받을 금액에 대해 합의하고 연장근로에 대한 대가로 주거나 받을 금액에 대해 역시 합의한다면 법이 개입해야 할 필요성은 낮다. 법의 개입은 최저임금 수준, 근로자가 연장근로를 거부할 권리, 계약 갱신의 주기 정도를 명시하는 것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노사가 자유의지로 합의할 수 있는 근로조건에 대해 굳이 법이 개입해 복잡하게 만들 이유는 별로 없다. 오히려 불확실성을 증가시키고 거래를 위축시키는 교란 요인이 될 우려가 높기 때문이다.

해석이 엇갈릴 수 있는 법은 줄소송을 유발하고 사회적으로 상당한 비효율을 초래한다. 정리해고의 전제 조건을 나열한 근로기준법 제24조 역시 그렇다. 사용자는 근로자 대표와 ‘성실하게’ 협의해야 한다는 의무, 해고를 회피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소진해야 한다는 의무는 그 충족 여부를 사후에 사법부가 어떻게 판단할지 사용자가 미리 가늠하기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기업들은 불확실성이 높은 해고 대신 비용이 많이 드는 명예퇴직에 의존해 왔으며 그만큼 일자리도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취지는 근로자 보호였지만 실제로는 일자리가 줄어들어 오히려 일하고 싶은 근로자에게 피해를 주는 법이 된 것이다. 통상임금 판결의 경우도 처음에는 연장근로수당이 일부 오를 수 있지만 그럴수록 기업은 자동화 속도를 높여 일자리는 더 빨리 사라지고 실업도 증가한다. 결국 김치찌개의 메뉴판 가격이 5000원으로 내려가듯 시간당 임금도 하락해 근로자들에게 돌아갈 이득이 사라질 가능성도 높다.

시장에서 근로자에게 도움이 되는 유일한 방법은 노동생산성 향상이다. 그래야 일자리를 유지하면서도 임금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동조합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사용자와 협력해 생산성을 제고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법 해석에 따라 임금이 오를 여지가 있으면 생산성 제고보다 소송이 더 쉽고 매력적으로 보일 것이다. 안 그래도 고용 보호의 경직성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장 심각한 수준인데 임금 비용의 불확실성까지 추가해서 경제에 무슨 도움이 될까. 일자리가 줄어드는 피해는 고스란히 근로자 몫으로 돌아간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이 “근로자는 노동법이 아니라 시장이 보호한다”고 일갈한 것도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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