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삶이 위기 아닌 적 있었던가
껴입을수록 추워지는 것은 시간과 세월뿐이다
돌의 냉혹, 바람의 칼날, 그것이 삶의 내용이거니
생의 질량 속에 발을 담그면
몸 전체가 잠기는 이 숨막힘
설탕 한 숟갈의 회유에도 글썽이는 날은
이미 내가 잔혹 앞에 무릎 꿇은 날이다
슬픔이 언제 신음 소릴 낸 적 있었던가
고통이 언제 뼈를 드러낸 적 있었던가
목조계단처럼 쿵쿵거리는, 이미 내 친구가 된 고통들
그러나 결코 위기가 우리를 패망시키지는 못한다
내려칠수록 날카로워지는 대장간의 쇠처럼
매질은 따가울수록 생을 단련시키는 채찍이 된다
이것은 결코 수식이 아니니
고통이 끼니라고 말하는 나를 욕하지 말라
누군들 근심의 힘으로 밥 먹고
수심의 디딤돌을 딛고 생을 건너간다
아무도 보료 위에 누워 위기를 말하지 말라
위기의 삶만이 꽃피는 삶이므로
찬바람 속에 온몸 꽁꽁 언 당신에게 손을 내밉니다. 설탕 한 숟갈에도 뉘우치는 당신께 따뜻한 물 한 잔 올립니다. 신음 소리도 내지 못하고 아파하는 당신을 두 팔로 껴안습니다. 고통을 끼니로 먹는 당신을 아무도 욕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근심과 수심이 공동체의 울타리를 지키는 걸 응원합니다. 보료를 걷고 문밖으로 나갑니다. 겨울나무가 봄나무 되듯, 차가운 눈꽃이 봄꽃이 되는 걸 믿습니다. 삶이 위기뿐 아니라 축제의 날도 있음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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