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뜩이나 일손이 부족한 소아청소년과에서 전공의 집단 사직이 지속되는 채 아무 대책 없이 2025년을 맞이했습니다. 소아 의료현장은 감염병 창궐과 맞물려 아비규환이 될 겁니다. "
최용재 대한소아청소년병원협회장(의정부 튼튼어린이병원장)은 15일 오후 대한병원협회 14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소아감염질환 선제 대응 촉구’ 기자회견에서 "지난해에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졌는 데도 정부가 이를 반면교사로 삼지 못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절대 있어서는 안될 일'이란 작년 11월 백일해로 입원 치료를 받던 생후 2개월 미만의 영아가 증상 악화로 사망한 사건을 말한다. 2011년 통계 작성을 시작한지 13년만에 처음으로 국내 첫 백일해 사망자가 나온 터라 당시 국민들의 충격은 컸다. 이런 가운데 소아청소년 환자를 진료하는 전문가 10명 중 8명 이상은 올해 독감 등 각종 소아 감염병이 증가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최 회장은 지난 9~13일 회원 병원 대표원장 43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소아감염병 증가 추이'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하며 “코로나 19 팬데믹 이후 독감, 백일해, 마이코플라스마,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 등 각종 소아 감염병의 창궐이 멈추지 않고 있다. 소아 감염병의 창궐을 막기 위한 선제적 대응 차원에서 소아 감염병 상시 관리체계 구축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이날 발표에 따르면 "올해 각종 소아감염병 유행이 어떠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 43명 중 38명(85%)이 "증가할 것"이라고 답했다. 그 중 46%는 "지난해보다 그 증가폭이 20% 이상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 가장 유행할 것으로 보이는 소아 감염병을 묻는 질문에는 전체 43명 중 가장 많은 13명(30%)이 '메타뉴모바이러스질환'을 꼽았다. 나머지 응답자 중 6명(13%)은 '독감'이라고 답했고, '마이코플라즈마'가 5명(12%), '아데노바이러스'가 4명(9%) 등으로 집계됐다.
최 회장은 “소아청소년병원 대표 원장들은 "질병 통계 등 각종 지표들을 수시로 분석하며 진료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며 "이번 조사는 소아의료 최전방에서 감염병과 사투를 벌이며 소아청소년병원을 책임지고 있는 대표원장들을 대상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더욱 크다"고 진단했다. 정부 당국이 이번 조사 결과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올해 협회의 중점 회무를 소아 감염병 타파로 정했다”며 "메타뉴모바이러스는 신종 감염병은 아니지만 (현재 유행 중인) 중국이 워낙 가까워 국내에서도 증가할 우려가 있다. 독감이나 마이코플라즈마 등은 과거와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본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몇년째 지속되는 소아감염병 증가에 대해 땜질식 대책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작금의 상황은 사후 약방문이 아닌, 보다 전향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처음으로 소아진료 지역혁렵체계를 구축하는 네트워크 시범사업을 시작한 것은 고무적이지만, 진료현장에서 체감하기엔 역부족이란 지적이다.
협회는 일선 소아청소년병원들이 느끼는 위기감이 의대 증원을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현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짚었다. 대형 병원조차 소아청소년과 전담인력이 부족해 응급실 정상 운영에 어려움을 겪다보니 위중증 환자를 전원보내는 데 애를 먹는다는 얘기다. 그는 "어렵게 구축된 네트워크 시범사업의 진료전달 체계가 제 역할과 구실을 할 수 있도록 확장할 필요가 있다"며 “합병증 및 위중증 발현을 막기 위해 역량 있는 발열클리닉의 경우 지원 기간을 연장하는 등 활성화 대책도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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