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정보기구(16개)는 국가정보장실(ODNI)을 정점으로 해외 정보 수집·공작을 담당하는 중앙정보국(CIA)과 방첩 및 국제범죄 수사를 맡는 연방수사국(FBI)이 양대 축을 형성한다. 20일 취임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ODNI 수장에 민주당 출신인 털시 개버드 전 하원의원, CIA 국장에 존 랫클리프 전 ODNI 수장, FBI 국장에 캐시 파텔 전 국방장관 비서실장을 각각 기용했다. 파텔 국장만 60대일 뿐 나머지 두 사람은 40대다. ‘슈퍼 트럼프 시대’의 야심이 투영된 포석으로 보인다.
더욱 강력해진 권력으로 중무장한 트럼프 행정부 2기는 1기 때와는 판도가 완전히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우선주의인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기치로 내세운 트럼프의 정책 결정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다. 각국은 가치나 선악보다 힘과 실리가 지배하는 냉혹한 국제 질서와 글로벌 대변혁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칠 것이며 이는 대한민국도 예외가 아니다.
우선 경제적으로 여러모로 불리한 정책이 우려된다. 당장 우리나라의 배터리와 전기차, 반도체 산업 전반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방위비 문제, 주한미군 감축, 북핵 대응 기조 변화와 같은 안보상 부담도 상당하다. 무엇보다 미중 전략 경쟁의 심화는 우리에게 큰 도전이다. 여기에 북한의 러시아 파병이 겹치면서 한반도가 그레이트 게임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
영국의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은 올해가 ‘냉전 후 가장 위험한 한 해’가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북한의 위협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국제적 불확실성에 더해 탄핵 정국이라는 설상가상의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우선 대외적으로 트럼프 리스크, 트럼프 포비아부터 극복해야 한다. 그러려면 트럼프 정책이 어떤 나비효과를 불러올지, 그리고 그 안에서 어떠한 기회를 찾을 수 있을지 정확한 분석과 대응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번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 사태로 국가 운영 시스템 자체가 흔들리고 있어 그 몫을 누가 감당할 수 있을지 염려스럽다. 비상시 국가 체제 유지의 축인 군과 경찰마저 수장 공백 상태다. 그나마 이번 사태에서 일부 논란은 있었지만 비교적 영향이 적은 핵심 국가기관이 국정원이다.
국정원은 국가 안보와 국익 수호의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국내 보안 정보 부서가 없어지고 대공수사권마저 폐지되면서 기능과 역할이 축소됐다고 해도 그 중요성은 여전하다. 세계 모든 정보기관이 그러하듯 영광이 있으면 오욕도 있는 법이지만 국정원이 축적해 온 정보 역량은 다른 어느 나라에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국가정보기관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잠재적 적국의 전략적 기습(strategic surprise)을 조기 경보하는 데 있다. 또 다른 역할로는 국가의 이익 증대와 안전 보장 추구라는 전략적 목적 달성을 위한 대내외 정책 추진에 있어 정책 환경 진단, 정책 수립 및 조정, 정책 선택, 정책 집행 및 평가 등이다. 대한민국이 대내외적으로 큰 위기를 맞은 현실에서 국정원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는 새롭게 출범하는 미국 정보 공동체와의 협력 체제부터 확고하게 구축하는 것이 급선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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