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종식, 평화 정착, 미국 우선주의, 고립주의 정책을 내걸고 대선을 치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이번에는 19세기의 제국주의를 부활시키려 한다. 그는 최근 열린 기자회견에서 캐나다를 미국의 주로 편입시키고 그린란드를 병합하며 경제적 압박 수단을 동원해 파나마운하를 손에 넣는 방안을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특히 그린란드와 파나마운하를 확보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외교정책의 ‘광인 이론’으로 되돌아가는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광인 이론이란 대통령이 때때로 예측 불가능하고 심지어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것이 상대국의 대응을 힘들게 만든다는 점에서 유익하다는 가설이다. 트럼프는 재임 1기 북한의 김정은을 상대로 이 같은 외교적 책략을 시도한 바 있다. 그는 먼저 이 세상에서 누구도 본 적이 없는 ‘화염과 분노’를 경험할 것이라는 협박과 함께 핵전쟁을 입에 올리며 김정은을 압박했다. 그리곤 돌연 ‘러브 레터’를 주고받으며 김정은과의 관계를 로맨스로 전환했다. 하지만 이들 모두 통하지 않았다. 북한은 여전히 핵무기 생산을 확대하고 짧은 휴지기를 거친 뒤 미사일 발사 실험을 계속하면서 남한을 향해 지속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다. 저명 학자인 대니얼 드레즈너는 “이제까지 나온 연구 결과를 종합해보면 광인 이론을 적용해 긍정적인 결과를 끌어낸 사례가 거의 전무하다”고 결론지었다.
캐나다를 미국의 주로 편입시킨다는 따위의 얘기는 트럼프가 싫어하는 진보 성향의 캐나다 총리에게 모욕을 주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캐나다의 트럼피언 정치인으로 통하는 더그 포드 온타리오주 총리와 보수당의 떠오르는 지도자인 피에르 폴리에브조차 트럼프의 무도한 발언에 강력히 반발했다. 2016년 대선전에서 트럼프가 멕시코를 향해 쏟아낸 ‘험한 말’은 그다음 열린 멕시코 선거의 여론조사에서 반미주의 색채가 짙은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즈 오브라도르 후보의 지지율을 극적으로 끌어올렸다. 이번에도 트럼프는 캐나다의 반미 기류를 조장하는 데 손을 보탤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가 파나마와 그린란드에 눈독을 들이는 데는 그럴 만한 근거가 있다. 파나마운하는 세계에서 가장 물동량이 많은 해상로 가운데 하나다. 파나마 당국은 책임감을 갖고 전문적으로 운하를 관리했으며 미국에 불이익을 주지도 않았다. 또 트럼프의 주장대로 중국이 운하 혹은 운하 지역에 군사적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직접적인 증거도 없다. 중국은 중미와 라틴 아메리카와의 경제 관계 증진에 잔뜩 공을 들이고 있다. 그러나 파나마운하를 식민지화하려는 미국의 시도는 베이징이 이들과의 관계를 손쉽게 확대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미국이 운하를 손에 넣으려 든다면 파나마 민족주의자들이 들고일어날 것이고 북미와 중남미 대륙 전역에서 미국의 신제국주의에 대한 공포가 되살아날 것이다.
그린란드는 역설적으로 트럼프가 가짜 뉴스라고 불렀던 기후변화로 인해 중요한 장소로 바뀌어가고 있다. 북극의 얼음이 녹으면서 유럽과 북미 사이에 새로운 해양 운송 항로가 열리면 러시아와 중국은 새로운 해로에서 경제적·군사적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다. 미국의 정책은 이 지역에서 발자국을 확대하려는 두 나라의 시도를 좌절시키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러나 이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굳이 그린란드를 수중에 넣어야 할 필요는 없다. 이미 미국은 그린란드에 대한 충분한 접근권을 보유하고 있다. 2차대전과 냉전 시기에 미국은 이 섬에 여러 개의 기지를 설치했고 이들 중 지금까지 남아 있는 한 곳이 우주군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미국이 세계 어디서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은 편협한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지 않고 평화·안정·규칙·규범 등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보다 광범위한 가치를 원한다는 사실을 다른 국가들에 납득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이 87개국을 결속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즉각 규탄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 가능했다. 이는 중국의 많은 주변국들이 미국과 동맹을 체결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기자회견에서 트럼프는 인위적으로 그어진 캐나다와 미국 사이의 국경선을 제거하자고 제안했다. 이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국경선에 관한 블라디미르 푸틴의 말과 정확히 일치한다. 시진핑이 지적한 중국과 대만의 인위적 분리도 마찬가지다. 트럼프가 꿈꾸는 것은 ‘러시아와 중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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