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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보다 더딘 교육혁신, 富의 불평등 불렀다[북스&]

■교육과 기술의 경주(클라우디아 골딘·로렌스 카츠 지음, 미래의 창 펴냄)

美 1970년이후 기술혁신 빠른데

교육발전은 늦어 학력 수준 저하

임금 격차 벌어지며 양극화 심화

중산층 소득점유율 62%→43% 뚝

사교육 심한 韓도 교육개혁 시급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는 자신의 승리에 큰 기여를 한 인구 표본으로 백인 남성을 꼽았다. 이를 좁히면 미국 내에서 한 때 중산층이었으나 경제적으로 소외된 러스트벨트 지역과 플라이오버 스테이트(미국 중서부 내륙 지역) 출신의 백인 남성이다. 2017년 브루킹스 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이들 지역의 45세 이상 유권자중 백인 남성 비율은 78%에 달하고 백인 남성 유권자 중 65%는 대학을 마치지 않았다. 이 경향은 한층 심화됐다. 한때는 기술 숙련도를 기반으로 탄탄한 중산층을 형성했던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1970년대 이후 계속해서 경제적으로 소외된 결과다.

그간 정치·경제적 관점에서 분석됐던 이들의 문제는 2023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클라우디아 골딘의 연구 렌즈 속에서 교육과 불평등의 문제로 환원됐다. 골딘에게 노벨 경제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겨준 ‘커리어와 가정(Career and Family)’이 2021년 출간되기 훨씬 전인 2008년 나온 저작 '기술과 교육의 경주(The Race between Education and Technology)가 최근 국내에 출판됐다. 각주와 참고문헌만 120페이지가 넘는다. 방대한 분량의 이 책에서 골딘은 하버드 경제학자인 로렌스 F.카츠와의 연구를 통해 1915년부터 2005년까지 미국 교육과 기술의 앞서거니 뒷서거니하는 양상이 어떻게 경제적·사회적 불평등 구조를 형성했는지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수많은 수식과 함수, 통계의 기법은 이 책의 문턱을 높이는 요소지만 핵심을 이해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다.



골딘과 카츠에 따르면 20세기 전반기의 미국의 급속한 경제 성장과 중산층 확대는 고등학교 교육의 보편화로 대표되는 ‘인적 요소 강화’의 결과였다. 이때는 고등학교 교육을 마친 노동자가 누릴 수 있는 프리미엄이 상당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교육으로 인한 혜택이 줄어들고 교육이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기술이 앞장서 나가는 분기점이 도래한다. 1970년대 이후 대학 진학률 증가세가 둔화되면서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고, 이는 임금 격차 확대로 이어졌다. 저자들은 이를 '교육과 기술의 경주'라는 프레임으로 설명하는데 교육이 기술을 앞서갈 때 불평등이 완화되고 그 반대일 때 불평등이 심화된다고 주장한다.

2008년 출간 이후 17년이 지난 지금 이 책이 던지는 문제의식은 더 심각해지고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AI) 붐으로 인해 인재들이 AI에이전트와 협업하는 시대에 기술과 교육 간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뒤처진 교육의 현실은 악화일로를 겪고 있다. 2020년 미국의 대표 싱크탱크인 퓨리서치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소득 불평등은 1980년 이후 약 20% 증가했으며, 중산층의 소득 점유율은 1970년 62%에서 2018년 43%로 급감했다. 더 이상 교육에 뒤처진 중산층이 설 자리는 없다.



압도적인 기술 변화의 첨병인 미국이지만 교육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데는 주마다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교육 재정의 격차도 큰 요인이다. 주별, 교육구별로 독립적으로 재정이 수립되다 보니 상대적으로 교육 재정이 부족한 주의 경우 교육 시스템이 계속해서 낙후될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가난한 지역의 아이들은 기초 학력 수준과 관계없이 더 나은 교육의 기회를 가질 수 없게 됐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교육 예산이 치안, 보건 등 예산으로 전환되면서 학령 인구는 줄었지만 인당 누릴 수 있는 교육 여건은 악화되고 있다.

사실 미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사교육비 지출이 가장 큰 나라에 속하는 우리나라의 교육 불평등 또한 심각하다. 전국민이 의대를 바라보며 대형 수학 프랜차이즈 학원의 레벨 테스트에 조부모까지 일희일비하는 상황은 우리 교육이 무언가 맞지 않는 방향으로 달리며 막대한 지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히 교육 기회를 늘리고 교육을 많이 시키는 것이 다가 아니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방향성 수립도 필요하다. 급변하는 기술 환경에 맞춘 교육 내용의 혁신, 평생 학습 체계 구축, 디지털 문해력 향상을 위한 교육의 변화가 일어나야 할 때다. 경주의 목표에서 멀어질수록 되돌리는데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664쪽. 3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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