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소비 침체로 명품 매출이 급감하면서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들이 태국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방콕 거리에서는 에르메스 가방을 든 여성, 초호화 스포츠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고, 태국 최초·동남아 최초 매장들도 잇따라 문을 여는 추세다.
블룸버그통신은 18일 프랑스 컨설팅업체 ‘럭셔리인사이트’를 인용해 지난해 동남아시아에서 오픈한 26개의 명품 매장 중 11개가 태국에 위치해 있다고 밝혔다.
태국의 달라진 위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지난달 오픈한 디올의 골드 하우스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 디올은 지난달 방콕의 고급 상권에 100만 개의 황금색 모자이크 타일로 장식한 골드 하우스를 오픈했다. 고급 카페까지 갖춘 이 매장은 태국 럭셔리 시장을 겨냥한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의 움직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다. 골드 하우스는 파리 본사를 연상시키는 외관으로 설계됐으며, 미슐랭 스타 셰프가 디저트 메뉴를 직접 개발했다. 럭셔리 매장과 미식이 결합된 새로운 개념의 복합문화공간이라는 점에서 주목 받고 있다.
루이비통 역시 방콕에 ‘더 플레이스’라는 이름의 복합문화공간을 열었다. 동남아 최초로 루이비통 레스토랑을 선보였으며, 전시관과 매장, 카페를 한데 모아 럭셔리 브랜드의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태국 유통 대기업 센트럴이 1억1500만 달러를 투자해 지난해 말 파툼완 쇼핑지구에 재개장한 플래그십스토어엔 태국 최초의 프라다 뷰티 부티크와 아시아 최초의 크리스찬 루부탱 바가 입점했다. 이 외에도 포르쉐가 현지 부동산 기업과 협력해 디자이너 콘도를 건설 중이며, 초고급 호텔 체인 아만도 방콕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명품 브랜드들이 태국에 주목하는 이유는 동남아시아의 성장 잠재력 때문이다. 글로벌 부동산컨설팅 기업 나이트프랭크에 따르면 2027년까지 동남아시아의 백만장자(자산 100만 달러) 수가 2022년 89만 명에서 140만 명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태국은 동남아시아 어디서나 4시간 이내에 도착할 수 있는 지리적 이점을 가지고 있으며 정부도 최근 비자 규정을 개정해 전문인력과 투자자, 부유한 외국인들의 장기 체류를 장려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오랫동안 인기 있는 관광지인 태국은 빠르게 축적되는 이웃 국가들의 부를 활용하기에 이상적인 위치에 있다”고 설명했다. 럭셔리인사이트 분석에서 지난해 태국을 포함한 동남아시아 지역의 럭셔리 매장 증가율(124%)은 중국(43%)과 일본(30%)을 크게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정책과 럭셔리 브랜드들의 잇따른 진출로 외국인 관광객의 방문도 증가하는 추세다. 태국 정부는 올해 외국인 관광객이 지난해 3550만 명에서 4000만 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인도와 중동에서의 관광객이 각각 31%와 24% 증가했으며, 이는 중국 관광객 감소를 상쇄하고 있다. 동남아 부유층을 비롯한 외국인 관광객의 유입이 늘면서 방콕의 대표적인 쇼핑몰 운영사인 시암피왓은 최근 4년간 향수와 가방 등 럭셔리 제품 매출이 4배 늘었다.
다만 태국의 ‘럭셔리 르네상스’에 리스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가계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89%로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높고, 지난해 3분기 기준 경제성장률이 인도네시아 등 주변국보다 낮다는 점은 리스크 요인으로 지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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