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변호인인 석동현 변호사가 ‘백골단’이란 명칭을 사용해 논란을 부른 반공청년단 대표와 단원들을 보수 단체 행사에 초청해 직접 소개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김민전 국민의힘 의원이 반공청년단을 국회로 부른 9일보다 앞선 8일, 이들은 보수 행사 무대에 올라 구호를 외친 뒤 경례했다.
19일 뉴스1에 따르면 석 변호사는 지난 8일 오후 2시쯤 자유진영시민사회단체 주최로 열린 신년 행사에서 김정현 반공청년단 대표와 단원 등 6명을 청중에게 소개했다. 당시 석 변호사는 "정말 고무적이고 반가운 소식이 있다"며 "불법 체포영장에 격분한 청년이 모인 한 단체(백골단)를 제가 불렀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바로 한남동 관저로 복귀해야 하는 분들이니 잠시 소개하겠다"며 김 대표와 백골단 복장을 한 남녀 5명을 무대 위로 불렀다. 무대에 선 김 대표는 "백골단 멤버들이 인사드리겠다"고 선창한 뒤 무대에서 단원들과 함께 '반공청년단'을 외치고 경례했고, 석 변호사는 이에 박수치며 호응했다.
반공청년단은 이 행사에 참여한 다음날인 9일 김민전 국민의힘 의원이 주선한 국회 기자회견에 참석해 존재감을 공고히 했다. ‘국가폭력의 상징’인 명칭을 그대로 사용한 반공청년단의 기자회견을 주선한 김민전 의원은 논란에 휩싸이자 “정확한 정보와 배경을 파악하지 못한 채 우리 당 의원이 기자회견을 주선한 것에 대해 당 차원에서도 사과드린다”며 사과하기도 했다.
이들이 출범한 이후 정치권과 시민들 사이에선 ‘백골단’이란 명칭에 대한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해당 명칭 자체가 한국 근현대사에서 국가폭력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백골단은 1980∼1990년대 집회·시위 현장에서 사복 차림으로 시위대 검거를 전담하던 경찰 부대를 일컫는다. 거슬러 올라가 이승만 정부 당시엔 자유당이 조직한 정치깡패 집단 명칭으로 쓰였다. 1890년대 당시 그들은 하얀 헬멧을 쓰고, 청재킷에 청바지를 착용했으며 무술 유단자나 특전사 출신들로 구성됐다. 1991년에는 명지대 1학년생 강경대 열사가 시위 도중 백골단이 휘두른 쇠 파이프에 맞아 숨지기도 했다. 당시 강경대 열사는 노태우 정권 타도, 총학생회장 석방, 학원 자율화 완전 승리를 외치던 중 백골단 소속 경찰에게 집단 구타당해 사망했다.
비판 여론이 커지자 이름 변경을 검토하겠다던 백골단은 지난 13일 “고심 끝에 반공청년단 예하 조직인 백골단의 이름을 유지한 채 활동을 계속 이어가기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백골의 정신은 감추고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 아니라 자랑스러워하고 계승해야 할 것이 훨씬 많다는 것이 반공청년단(백골단) 지도부의 결론"이라는 설명이다.
반공청년단을 치켜세운 석 변호사는 지난 15일 윤대통령이 체포되기 직전까지도 “사실 시민들이 관저 문 앞이나 입구에서 대통령 차량이 나가는 걸 막아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 같다”면서 지지자들의 결집을 부추겼다. 그가 백골단을 행사에 초청한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의 과도한 결집을 유도하고 갈등을 키웠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19일 새벽 서울서부지방법원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 대통령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윤 대통령 지지자들은 법원 건물 진입을 시도하며 폭력을 행사했다. 시위대는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며 경찰 장비를 빼앗아 공격에 사용했고, 법원 건물의 유리창과 문을 부수는 등 심각한 파손 행위를 자행했다. 일부는 내부 소화기를 무기로 사용해 혼란을 가중시키기도 했다. 이날 영장 발부에 격분해 경찰을 폭행하거나 법원 내부로 침입해 각종 기물을 파손한 혐의를 받는 46명은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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