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니까 법원이 무너졌대요. 어디에다가 뭘 물어봐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울 서부지방법원이 윤석열 대통령의 극렬 지지자들이 벌인 불법 폭력 사태로 아수라장이 된 가운데 서부지법에서 재판을 앞두고 있던 시민들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서부지법 측이 ‘정상 운영’ 계획을 밝혔지만 청사 곳곳이 박살 나고 시설·기물 파손이 극심한 만큼 자신의 재판에 직·간접적인 악영향이 갈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는 상황이다.
20일 서울경제신문의 취재를 종합하면 서부지법은 전날 공지한 대로 이날 예정된 재판들을 진행 중이다. 다만 법원 관계자는 “기일 변경 없이 모든 사건에 대한 재판이 열렸는지 확인해 줄 수는 없다”면서 “단 법정 내부 파손은 현재까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전날 서부지법은 “내일 법원은 정상적으로 운영된다”고 공지한 바 있다. 같은 날 천대엽 대법원 법원행정처장은 서부지법을 찾은 뒤 "법원 내 기물 파손 등 현장 상황이 생각했던 것보다, TV로 본 것보다 열배 스무배 참혹하다"면서 "오후부터 밤을 새워서라도 (복구할 경우) 내일 업무가 정상적으로 진행 가능한지 확인 중"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서부지법에서의 재판이 예정돼 있던 시민들의 불안은 계속되고 있다. 온라인에 공개된 난입 현장 영상에 극렬 지지자들 일부가 판사실까지 침입하고 컴퓨터에 물을 붓는 모습이 포착되는 등 피해 수준이 심각하다는 판단에서다.
19일 한 네티즌 A씨는 자신의 SNS에 “내일 소송 때문에 법원에 가야 하는데 일어나니 법원이 무너졌단다. 사법부가 공격받은 게 처음이라 어디에 물어봐야 할지도 모르겠고 내일 변호사님께 연락해 봐야겠다”며 큰 당혹감을 표출하기도 했다. 이어 A씨는 “극우 집회가 집어던진 컴퓨터 본체에 내 사건번호가 있는 것 아니냐”며 분노를 보였다.
이와 관련해 다른 네티즌들도 “날벼락이다. 재판이 줄줄이 밀리는 것 아니냐”, “너무 놀라서 내 담당 사건의 관할 법원이 어딘지 다시 한번 찾아봤다”, “지지자들의 난입으로 다른 사람들의 일상까지 망가졌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현재 서부지법에서는 민원인이 오가는 법원 청사 1층뿐 아니라 5, 6층 등 판사와 법원공무원이 일하는 위층까지도 피해가 확인됐다. 다만 이날 법원 관계자는 ‘혹시라도 중요한 자료가 미처 복구되지 않았으면 어떡하냐’는 우려와 관련해 “(저장 자료 피해가) 재판 진행에는 지장이 없는 수준”이라고 전했다.
이밖에 재판에 참석해야 하는 교통 약자들에게 추가적인 피해가 갈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서부지법은 난동 사태 이후 차량을 통한 법원 출입은 불가능하고, 출입자마다 엄격한 신분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힌 상태다. 이에 거동이 불편한 시민의 경우 이전보다 법원 방문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형 사법기관이 유사시에 멈춰 설 경우 이로 인한 사회적 피해가 극심한 만큼 더욱 보안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2023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서부지법은 1년간 항소심 3386건, 1심 36만 2641건 등 총 36만 6027건의 사건을 접수해왔다. 단순히 주말과 휴일을 제외한 근무일(248일)로 나누면 하루에 평균 1476건의 사건이 접수된 것이다.
또한 법원통계월보를 살펴보면 서부지법은 지난해 1월 기준 총 2070건을 처리(판결)했다. 단 며칠만 법원이 멈추거나 재판일을 연기하게 돼도 이와 관련된 수백~수천 명에게 피해가 가는 셈이다.
한편 이날 오전 9시 30분께부터 조희대 대법원장은 서울서부지법 난입 사태와 관련해 긴급회의에 나섰다. 조 대법원장은 대법관들을 소집해 향후 재발 방지책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전날 경찰청 역시 이호영 경찰청장 직무대행 주재로 전국 지휘부 긴급회의를 연 뒤 각 시·도경찰청에 ‘또 다른 지역에서도 윤 대통령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비슷한 폭력 시위가 일어나지 않도록 정보 파악과 경비 태세를 강화해달라’는 당부를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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