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들의 신들린 연기가 만들어낸 ‘무속 K오컬트 장르'의 탄생"
배우 송혜교가 ‘더 글로리’에 이어 2년 만에 컴백 작품으로 선택해 화제가 됐던 영화 ‘검은 수녀들’이 20일 언론 시사회를 통해 공개됐다.
영화는 송혜교의 복귀작이라는 점 외에도 544만 명의 관객을 모은 ‘검은 사제들’(2015)의 스핀 오프 작품이라는 점을 비롯해 지난해 천만 관객을 동원한 ‘파묘’와 같은 오컬트 장르라는 점도 역시 화제가 되며 올해 설 개봉작 중 최고 기대작으로 꼽히기도 했다.
기대 속에 베일을 벗은 ‘검은 수녀들’은 한마디로 새로운 ‘연기의 신들’이 빚어낸 ‘무속 K오컬트 장르’였다. 가톨릭 구마 의식에 무속 신앙이 결합됐기 때문이다. 수녀와 무당, 구마 의식과 굿의 경계가 모호한 K오컬트 장르의 탄생을 알린 것이다.
영화는 유니아 수녀(송혜교 분)가 악령에 사로잡힌 소년 부마자 희준(문우진 분)을 위해 금지된 구마의식을 감행하려는 데서 시작한다. 부마를 정신질환의 일종으로 여기는 수녀 미카엘라(전여빈 분)는 처음에는 유니아의 신념에 맞서지만 서서히 그의 조력자가 된다. 유니아와 미카엘라 수녀가 희준을 구하기 위해 진행하는 가톨릭 구마의식에 무속 신앙이 결합하면서 영화는 독특한 ‘무속 K오컬트’ 장르를 만들어 냈다.
구마의식와 무속신앙이 결합된 ‘무속 K오컬트’ 장르는 빛났지만 다소 설득력이 부족한 서사에 몰입감을 선사한 것은 오로지 배우들의 신들린 연기력이었다. 주연 송혜교, 전여빈, 문우진, 이진욱을 비롯해 남녀 무당 등 조연들의 연기에는 소위 말해 ‘구멍’이 없었다.
특히 유니아 수녀 역을 맡은 송혜교에게서는 ‘로코·멜로·장르의 여신'에서 ‘모든 장르’가 가능한 여배우로, ‘연기의 여신’으로 우뚝 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담배를 피우고 욕을 하고 금지된 구마의식을 감행하며 소위 말해 ‘기빨리는’ 연기를 능수능란하게 선보였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순풍 산부인과’의 용녀(선우용녀 분) 역을 맡는다고 해도 ‘찰떡’ 같이 소화해낼 수 있을 만큼 그는 이제 나이와 배역의 한계를 뛰어 넘는 연기를 펼칠 준비를 완전히 마친 듯 하다. 그는 ‘검은 수녀들’에서 세상사를 통달한 성직자이자 인간에게서나 나올 법한 초연한 눈빛과 표정 연기로 스크린을 압도했다. 그의 달관한 듯 깊은 눈빛 연기가 배우 송혜교, 인간 송혜교의 발자취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또 이 영화에서 가장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낸 배우는 2009년생 문우진이다. 아직 ‘연기 신동’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릴 법한 나이에 이미 ‘연기의 신’ 반열에 올랐기 때문이다. 희준 역을 맡은 그는 러닝 타임 내내 악령에 사로잡힌 소년 부마자로 분해 숨 막히는 강렬한 연기력으로 관객들을 압도한다. 15세이어서 캐릭터를 스펀지처럼 빨아 들여 아무 생각이 없이 몰입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15세 임에도 ‘물아일체’ 연기가 가능한 그야말로 ‘본능적으로 연기'하는 타고난 배우일까. 그 어느 쪽이든 문우진을 빼놓고서 ‘검은 수녀들’은 존재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그는 디즈니+의 ‘트리거’에서 미스터리한 남학생으로 출연해 단 1초 만에 선과 악의 표정 전환으로 소름 끼치는 연기력을 선보이기도 했다. 조심스럽게 그가 ‘제2의 송강호, 황정민, 이병헌’이라는 ‘연기의 신’으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해 본다.
미카엘라 역을 맡은 전여빈은 ‘젊은 여배우 기근 시대’에 가장 빛 날 배우로의 탄생을 알리고 있다. 유니아 수녀를 의심하다 결국 희준을 구하는 데 조력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그의 연기는 영리했다. 주연 송혜교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물러 설 줄도, 자신이 돋보기 위해서 나설 줄도 아는 연기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전여빈은 지적인 여배우로서 독보적인 입지를 확고히 할 배우라는 생각이다. ‘하얼빈’을 비롯해 ‘검은 수녀들’의 시사회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보여준 그의 지적이고 지혜로운 답변에서는 절로 감탄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는 ‘하얼빈’ 기자간담회에서 "지금 이 혼란스러운 시기를 다 같이 겪고 있을 국민 여러분과 함께, 우리 영화도 더 나은 내일을 도모하기 위한 더 큰 뜻을 품고 있다. 더 나은 민주주의를 꿈꾸며 앞으로 나아가길 바라고, 그런 의미에서 '하얼빈'이 여러분에게 힘을 보태주길 바라는 마음이다"라고 말해 감탄을 자아냈다. ‘검은 수녀들’ 기자간담회에서도 전여빈은 "여성으로서 연대해야 되기 때문이 아니라, 한 생명을 구하기 위한 더 큰 신념이 있었기 때문에 둘이 한 마음을 가졌던 것 같다. 이 과정에서 바오로(이진욱 분) 신부님 처럼 주위의 도움이 필요하게 되는데, 뭔가 단계적으로 나아가는 사람의 걸음들과 도움을 느꼈다. 그것들이 영화 안에서 잘 표현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이 작품이 여성 연대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아니냐 질문에 나온 답이다.
마지막으로 영화의 장르와 연기력은 탁월했지만 서사의 몰입감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구마의식을 하게 된 수녀와 악령에 사로잡힌 소년의 전사가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돼 ‘구마의 필요성’이 설명됐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이유다. 악령에 사로잡힌 소년이 학교 폭력의 피해자였다는 전사는 지금 이 시대에 가장 MZ세대 관객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음에도 감독은 왜 이 전사를 살리지 않았을까하는 의문이 남는다. 또 미카엘라 수녀의 전사 역시 극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요소였음에도 너무 축약돼 캐릭터를 완성하는 데 방해가 됐다. 24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