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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천 칼럼] 시오도어 루스벨트와 도널드 트럼프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제임스 먼로는 미국의 5대 대통령이었다. 미국 외교 정책 연구자들에게는 그가 1823년 천명한 ‘먼로(Monroe) 독트린’으로 익숙하다. “미국과 유럽의 선린(善隣) 관계”를 언급하며 시작하는 먼로 독트린은 “유럽의 서반구 개입을 미국의 평화와 안전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겠다”는 섬뜩한 경고였다. 신생국 미국이 여전히 유럽 열강에 비해 힘이 열세였지만 아메리카 대륙만큼은 자국의 ‘지배권(sphere of influence)’ 하에 두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천명이었다. 먼로 대통령은 스페인에 500만 달러를 지급하고 플로리다를 획득했는데 이는 프랑스로부터 루이지애나를 매입한 이후 가장 중요한 미국의 영토 확장 거래였다. 먼로 독트린의 기치 아래 미국은 서반구에서의 영향력 강화를 본격화했다.

19세기 초 먼로 독트린이 21세기 미국에서 다시 소환됐다. 20일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전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편입하고, 그린란드와 파나마 운하를 획득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멕시코만(Gulf of Mexico)’을 ‘미국만(Gulf of America)’으로 명칭을 바꾸자고도 했다. 뉴욕포스트는 이러한 주장을 먼로 독트린에 빗대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인 도널드(Donald)와 먼로(Monroe)를 합성해 ‘돈로(Donroe) 독트린’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서반구에서 확실한 지배력을 행사하겠다는 것이 먼로 독트린이었으니 분명히 유사점이 존재한다. 먼로 대통령이 유럽의 개입을 차단하려 했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저지하려는 의도가 있어 보인다.

미국의 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1904년 먼로 독트린을 ‘루스벨트 독트린(Corollary)’으로 발전시켰다. 먼로 독트린의 후속판 정도로 이해할 수 있는데 “먼로 독트린 준수를 위해 ‘내키지는 않지만(reluctantly)’ 미국이 무력행사에 나설 수도 있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와 파나마 운하를 획득하기 위해 군사력을 사용할 수도 있다고 했으니 사실 돈로 독트린은 먼로 독트린보다 루스벨트 독트린에 더 가깝다. 먼로 대통령은 재임 기간 군사력을 사용해 라틴 아메리카에 개입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루스벨트 대통령은 실제로 미 해군을 파견해 도미니카의 세관을 통제했고 쿠바와 베네수엘라의 내정에 간섭하기도 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파나마 운하 건설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도움으로 파나마는 쿠바로부터 독립을 쟁취했고 파나마는 재정적 보상을 받고 운하 지역 통제권을 미국에 부여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내가 운하 지대를 차지했다(I took the canal zone)”라며 무척 자랑스러워했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은 그린란드 매입에도 심혈을 기울였으나 결국 무위로 돌아갔다. 대신 미국과 덴마크는 미국이 그린란드를 방어할 수 있는 협정을 체결했다. 루스벨트 대통령 임기부터 미국은 제국주의 시대 논리에 편승해 서반구를 넘어 세계적으로 영향력 확장을 시도했다. 그러나 제국주의 시대는 결국 저물고 말았고 파나마 운하는 파나마에 영구 반환됐다. 그린란드 매입 제안 역시 2차 대전 이후 미국에서 동력을 잃었다.

타국의 영토를 금전으로 구매하거나 군사력을 동원해 점유하는 정책은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제국주의 시대에나 그나마 가능했던 발상이다. 이러한 발상은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구축하고 유지해 온 규칙 기반의 자유주의 국제질서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돈로 독트린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할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일단 엄포로 보이는데 돈로 독트린이 실제로 실행에 옮겨진다면 미국 외교 정책의 시계를 제국주의 시대로 돌려놓을 것이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힘을 통한 평화’의 신봉자였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부드럽게 말하되 ‘큰 몽둥이(big stick)’를 들고 다니라”라고 했는데 그래야 ‘힘을 통한 평화’가 가능하다고 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때때로 몽둥이를 휘두르기도 했지만 외교와 국제협력을 우선시했다. 성대한 취임식과 함께 화려한 복귀를 신고한 트럼프 대통령. 아직 루스벨트 대통령에게서 배울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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