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첫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친분을 강조하며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규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일 취임식 직후 백악관 직무실에서 “나는 김정은과 매우 잘 지냈다”며 “이제 그는 뉴클리어 파워(nuclear power·핵 보유국)”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핵무기를 가진 나라와 잘 지내면 좋은 일”이라고 밝힌 적은 있지만 핵 보유국으로 지칭한 것은 처음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지명자도 이달 14일 상원 인사청문회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핵 보유국으로서 북한의 지위는 한반도와 인도태평양·세계 안정에 위협”이라고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의 담판을 통해 북한 비핵화가 아닌 북핵 동결이나 핵 군축 등을 대가로 대북 제재를 완화하는 ‘스몰딜’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핵 보유국’ 표현은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미국·중국·러시아·영국·프랑스 등 5개 ‘핵무기 국가(nuclear weapon state)’와는 다른 개념이다. 하지만 북한이 인도·파키스탄·이스라엘 등과 마찬가지로 ‘사실상 핵 보유국’ 지위를 부여받을 경우 국제사회의 뚜렷한 제재를 받지 않고도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하게 된다. 이미 미국 내에서는 지난해 민주당·공화당이 강령에서 ‘북한 비핵화’ 문구를 삭제하는 등 기류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라파엘 그로시 사무총장마저 지난해 북한을 사실상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자는 뉘앙스의 발언을 해 우려를 낳았다.
미국이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할 경우 한반도는 물론 전 세계 안보가 위태로워지면서 동북아의 도미노 핵무장을 촉발하게 된다. 우리 정부와 정치권은 민관정 네트워크를 총동원하고 일본과 공조해 ‘완전한 북핵 폐기’ 원칙을 견지하는 것이 미국의 국익과 안보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설득해야 할 것이다. 특히 우리의 국정 리더십 부재를 틈타 한국을 ‘패싱’한 북미 직거래 협상이 진행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 미국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를 적정 수준에서 수용하는 대신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등을 통한 핵 잠재력 확충 방안 등을 찾아야 한다. 북한의 오판을 부르지 않도록 첨단 군사력 확보와 실전 훈련 등을 통해 자주 국방력을 강화하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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