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 프로젝트에 찬물을 끼얹으며 파장이 커지고 있다. 5000억 달러(약 720조 원)라는 막대한 자금의 조달 가능성에 의구심을 제기하며 프로젝트가 실현되기 어렵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지적한 것이다. ‘퍼스트 버디’라고 불릴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휘둘렀던 머스크가 트럼프의 미래 청사진이 담긴 AI 프로젝트에 딴지를 걸면서 둘의 관계에 균열이 생기는 신호가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22일(현지 시간) 주요 외신 등에 따르면 머스크 CEO는 전날 밤 ‘챗GPT’ 개발사인 오픈AI가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 계정에 올린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에 관한 게시 글에 “그들은 사실 돈이 없다. 나는 믿을 만한 소식통으로부터 소프트뱅크가 100억 달러에도 못 미치는 자금을 확보했다고 들었다”는 댓글을 달았다. 머스크는 투자사 아트레이드매니지먼트의 최고투자책임자(CIO)인 개빈 베이커가 쓴 비판적인 글을 리트윗하기도 했는데 ‘스타게이트는 훌륭한 이름이지만 5000억 달러는 터무니없는 숫자이고 그 누구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는 게 골자다.
해당 프로젝트는 소프트뱅크와 오라클·오픈AI가 합작법인 스타게이트를 설립해 올해 1000억 달러, 앞으로 4년간 총 5000억 달러를 투입해 미국 전역에 AI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계획대로 진행되면 미국의 글로벌 AI 패권을 더욱 공고히 함으로써 트럼프 2기의 대표적인 성과로 기록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 같은 기대를 반영하듯 트럼프 대통령은 21일 기자회견을 갖고 “당장 미국에 1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낼 ‘기념비적인 사건’”이라고 자랑했다. 트럼프가 장밋빛 전망을 내놓는 상황에서 트럼프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머스크가 기자회견 불과 몇 시간 뒤 프로젝트의 ‘비현실성’을 지적하고 나서자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주요 외신들은 일제히 이 사건을 비중 있게 보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에 대한 머스크의 반응은 그와 이 행정부 사이에서 드러난 첫 번째 공개적 균열”이라며 “대통령이 키우려는 계획에 대해 고위 정책 관계자가 문제를 제기하는 것 또한 이례적인 행보”라고 짚었다. 머스크와 트럼프의 관계가 지금까지와는 달리 틀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악시오스는 “머스크가 오픈AI와 다른 거대 기술기업(빅테크)들이 주도하는 5000억 달러 규모의 프로젝트를 깎아내리는 것은 트럼프의 분노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봤다.
다만 머스크의 이번 발언은 트럼프가 아닌 오랜 앙숙인 오픈AI의 샘 올트먼 CEO를 조준한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올트먼도 이날 머스크의 지적이 사실과 다르다고 발끈하며 “국가에 최선인 것이 항상 당신 회사에 최선은 아니겠지만 당신이 새 역할을 맡은 이상 미국을 최우선에 두길 바란다”고 비꼬았다. 머스크는 올트먼과 함께 오픈AI를 설립했지만 2018년 의견이 맞지 않아 갈라선 후 그의 행보에 사사건건 적개심을 드러내왔다. 둘 사이에는 법적 다툼만 4건이 진행 중이다.
한편 머스크의 주장이 사실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한 소식통은 파이낸셜타임스(FT)에 “초기 투자금 1000억 달러의 대부분은 (발표와 달리) 소프트뱅크가 아닌 신규 투자자로부터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소식통은 “초기 투자금은 결국 지분과 부채의 조합이 되겠지만 1000억 달러를 즉시 투입할 준비는 끝났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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