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처음 열린 쿼드(Quad, 미국·일본·호주·인도로 구성된 4개국 비공식 안보협의체) 회의 공동성명에서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이 빠진 것으로 확인됐다. 직전 열렸던 쿼드 회의에서는 해당 표현이 들어갔다. 앞서 “김정은은 핵보유국(Nuclear power)”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까지 나온 가운데 미국의 대북 정책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진다.
마코 루비오 미 신임 국무장관을 비롯한 쿼드 국가 외교장관들은 21일(현지 시간) 워싱턴DC에서 만나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이번 회의는 전날 상원 인사청문회를 통과한 루비오 장관의 사실상 첫 공식 일정이었다. 이들은 회의 뒤 채택한 공동성명에서 “무력이나 강압에 의해 현상을 변경하려는 일방적 행동에 반대한다”며 사실상 중국을 겨냥했다.
하지만 그간 쿼드 정상회의나 외교장관 회의 뒤 나온 공동성명에는 빠짐없이 들어갔던 한반도 비핵화를 포함한 북한과 관련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지난해 7월 쿼드 외교장관 회의 공동성명에서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규탄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른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공약을 재확인했다”고 적었다. 앞서 나온 공동성명보다 분량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쿼드 회원국인 일본의 안보에도 중요한 북한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는 점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트럼프 정부 들어 첫 쿼드에서 이 같은 변화가 있었던 것을 두고 외교가에서는 트럼프 측 내부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회의론이 커진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 지명자가 청문회에서 “북한은 핵보유국”이라는 표현을 쓴 데 이어 트럼프 대통령도 기자들과의 질의응답 과정에서 “김정은은 핵보유국”이라고 지칭했다. 루비오 장관은 “어떤 제재도 (북한의 핵) 능력을 개발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면서 ”보다 광범위하게 대북 정책을 진지하게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미국 내에서는 트럼프 정부의 대북 정책을 예단하기는 섣부르지만 북한의 핵 위협이 집권 1기와 달라졌다는 점을 트럼프 측 인사들이 인지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시드니 사일러 선임고문은 “북한이 계속 무기고를 질적·양적으로 늘린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면서 “트럼프와 그의 안보팀이 지난 4년간 진화한 북한의 위협을 살펴봤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그는 다만 ‘김정은은 핵보유국’이라는 표현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기는 이른 단계라고 평가했다.
한편 우리 정부는 쿼드회의 공동성명에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이 빠진 데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다. 이재웅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관련 질의에 “트럼프 대통령 취임 계기로 이뤄진 회의인 만큼 기존 원칙을 재확인하자는 짧은 내용으로 구성돼 있고 북한뿐 아니라 그 어떤 나라 관련 이슈도 언급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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