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대미 투자와 미국산 수입을 늘리겠다는 러브콜이 잇따르고 있다. 관세 폭탄과 규제 혁파, 감세 등 친시장 정책, 미국 경제 ‘나홀로’ 호황 등 3박자가 맞아 떨어진 결과다. 트럼프 대통령은 구체적 사례는 언급하지 않은 채 취임 첫날 기준 미국에 대한 신규 투자 규모가 3조 달러(약 4300조 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는 미 연방정부 1년 예산(약 6조 8000억 달러, 2024년 회계 기준)의 절반에 달하는 것으로 트럼프 집권 4년에 나눠 집행된다고 해도 연 7500억 달러 이상이 미국으로 투자된다는 의미다.
23일(현지 시간)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통신 SPA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겸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하며 향후 4년간 대미 투자와 무역 확대에 6000억 달러(약 860조 원)를 투입할 의향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이후 외국 정상급과 통화한 것은 빈 살만 왕세자가 처음이다. 빈 살만 왕세자는 “미국 새 행정부에 의해 만들어지는 투자·파트너십 기회를 잡고 싶다”며 “이는 전례 없는 경제적 번영을 가져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기회가 추가로 생기면 투자 규모를 더 늘릴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인도는 미국산 위스키, 철강 제품, 원유 등의 수입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날 로이터통신은 소식통을 인용해 “인도와 미국 외교관들이 무역 문제 등과 관련해 다음 달 미국 워싱턴DC에서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다”며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양국 무역 관계를 개선하고 인도인 전문직 종사자가 미국 비자를 쉽게 받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블룸버그통신도 인도가 미국과 무역협정 체결, 수입 관세 인하 등의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전했다. 인도 입장에서 미국은 최대 무역 파트너이며 2023~2024 회계연도(2023년 4월~2024년 3월) 인도는 미국으로부터 320억 달러의 무역흑자를 기록했다.
앞서 21일 오픈AI·소프트뱅크·오라클도 미국 인공지능(AI) 인프라에 500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고 7일에는 아랍에미리트(UAE)의 억만장자 후사인 사지와니 다막부동산 설립자가 미국 데이터센터 설립에 20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다음 달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는 일본 역시 AI·나노테크놀로지 등의 분야를 포함한 대미 투자 패키지를 준비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날을 세웠던 대만도 대미 투자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최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대만 노트북 제조업체 컴팔, AI 서버를 만드는 인벤텍이 텍사스를 거점으로 미국 투자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트럼프 대통령은 21일 기자회견에서 “백악관에서의 첫 번째 영업일(취임일)이 저물기도 전에 미국에 대한 신규 투자로 3조 달러를 확보했다”며 “이번 주말까지 액수는 6조~7조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 세계 국가들의 이 같은 움직임은 일차적으로는 관세 폭탄의 충격을 피하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2월 1일부터 멕시코와 캐나다에 25%, 중국에 10% 관세를 매기겠다고 밝힌 상태다. 글로벌 기업들은 미국 시장의 교두보로 멕시코·캐나다에 공장을 세웠는데 만약 관세가 부과된다면 미국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 멕시코는 한국의 가전·철강 업체가 많이 진출해 있으며 대만도 북미 지역 전기차, AI 서버에 들어가는 부품을 생산하는 곳이다. 중국에 생산라인을 가진 기업도 여전히 많아 관세가 부과된다면 역시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강력하게 추진하는 친시장 정책도 투자 유치 흐름에 한몫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첫날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이를 통해 화석연료 시추 및 소형모듈원전(SMR)에 필요한 각종 인허가를 대폭 단축, 세계에서 가장 에너지가 저렴한 나라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현재 21% 수준인 법인세를 15%로 인하하는 방안을 추진하며 10억 달러 이상 투자에 대해선 신속하게 인허가를 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미국 경제가 호황을 구가하는 것도 해외 자본이 밀려 들어오는 요인으로 꼽힌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미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을 2.7%로 종전보다 0.5%포인트나 올려 잡았다. 주요 선진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날 로이터는 “미국의 잠재 성장률이 코로나 19 팬데믹 이전부터 증가하고 있다”며 “일자리도 완전 고용 상태이며 물가를 감안한 연간 임금 인상률은 40년 평균치의 2배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지난 1년간 이뤄진 그린필드 외국인직접투자(FDI) 건수는 미국이 2100건에 달해 400건 내외를 기록한 중국을 크게 앞질렀다.
다만 트럼프의 경제 정책이 과도한 장밋빛 전망에 휩싸여 있다는 경계론도 적지 않다. 국내 기업 워싱턴지부의 한 관계자는 “현 시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계획만 보면 모든 것이 잘될 것 같지만 갈수록 현실의 벽에 부딪힐 수 있다”고 짚었다. 단적인 예로 규제를 화끈하게 풀어 석유·천연가스 시추를 늘린다고 하지만 이미 미국 내 시추량이 사상 최대 수준인 상황에서 원유 가격이 떨어지면 시추를 확대할 유인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 세수가 부족한 상황에서 법인세 인하가 관철될지도 불확실하며 관세 역시 협상용 카드라는 지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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