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해 도입한다고 발표한 프로젝트 리츠가 프로젝트 리츠가 고환율로 시름하는 기업들에 또다른 자금 조달 통로로 떠오르고 있다. 준공 후 매각하는 PFV(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 사업과 달리 영속적으로 임대·운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투입 비용만 몇천억 원에 달하는 생산 공장이나 데이터센터, 연구개발(R&D) 센터 등을 리츠를 통해 개발하고 안정적으로 장기 임차할 수 있다.
23일 리츠업계에 따르면 LG그룹의 부동산관리회사 D&O는 이달 국토교통부에 R&D리츠와 산업단지리츠 등 자산 개발 단계부터 투자하는 프로젝트 리츠에 대한 운용 계획을 담은 리츠AMC(자산관리회사) 설립 인가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미 SK리츠를 운용하고 있는 SK그룹도 SK하이닉스 생산 공장 등을 짓는 프로젝트 리츠를 추진하고 있다. 현대차그룹도 최근 '현대얼터너티브자산운용'을 설립하고 리츠AMC 인가를 준비하기로 했다. 현대카드와 현대커머셜이 각각 51%, 49% 지분을 취득해 설립을 완료했으며, 우선적으로 금융사가 보유하고 있는 자산 유동화를 검토할 계획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제도 도입을 기다리면서 프로젝트 리츠 사업 계획을 짜는 곳도 있고, 리츠로 추진하다가 추후 프로젝트 리츠로 전환하려고 준비하는 곳도 많다"며 "기본적으로 기업이 장기 임차하는 만큼 준공하고 바로 청산하기 아까운 자산들이고, 리츠로 개발해서 운영까지 하게 되면 취득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만큼 기업들에겐 메리트가 크다”고 설명했다.
리츠란 다수의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아 부동산이나 부동산 관련 증권 등에 투자하고 수익을 투자자에게 배당하는 주식회사다. 이에 따라 SK그룹과 한화그룹, 롯데그룹 등 많은 대기업들이 회사가 보유한 사옥이나 백화점, 마트 등 자산을 리츠에 넘기며 현금을 확보해왔다.
그러다 지난해 정부가 PF사업 건전성 강화를 위한 대책으로 프로젝트 리츠를 통해 부동산을 개발할 때 토지를 현물출자하면 양도차익 과세와 납부를 이연해주겠다는 내용을 발표하면서 기업들의 관심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공장이나 데이터센터 등을 지으려면 토지를 확보한 뒤 PFV를 설립해 개발 사업을 진행하고 완공된 후 리츠에 재매각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으나 앞으로는 프로젝트 리츠를 활용해 개발 및 운영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취득세나 사업비(금융비용) 등 추가 비용이 생략되는 만큼 리츠의 수익률도 높아질 수 있다.
LG그룹과 현대차그룹 역시 이같은 자산 개발과 운용을 염두에 두고 본격적인 리츠 사업에 뛰어드는 것으로 보인다. LG그룹은 디스플레이, 이노텍, 화학, 에너지솔루션, 하우시스 등이 입주한 R&D 허브인 마곡 LG사이언스파크부터 가산 LG사이언스파크, 파주 LG디스플레이 R&D 센터, 평택 LG전자 디지털파크 등 다수의 연구개발센터를 보유 중이다. 리츠업계의 한 관계자는 "LG그룹은 전기차와 인공지능(AI), 배터리, 바이오 등 차세대 기술 개발에 방점을 두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연구개발과 시설투자를 늘려야 할 것"이라며 "프로젝트 리츠를 통해 초기 투자 비용을 절감하고 운영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LG D&O 관계자는 "내부적인 검토 수준"이라며 "1호 자산으로 LG헬로비전이 임차하고 있는 상암 드림타워 매입을 추진하고 있으며 구체적인 계획은 AMC 인가를 받은 뒤 추후 결정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태광그룹도 이달 리츠AMC 설립을 위한 인가를 국토부에 신청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우선적으로 광화문에 위치한 흥국생명빌딩을 담을 계획이며 추후 계열사가 보유한 공장이나 창고, 유휴 부지 등을 리츠를 통해 개발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리츠협회의 한 관계자는 "대기업들은 물론 직접 리츠AMC를 설립하기 어려운 중견기업들도 투자와 운영자금 확보를 위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외부 AMC와 손잡고 리츠를 설립하려는 곳도 여러 곳"이라고 전했다.
다만 프로젝트 리츠 제도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려면 조세특례제한법과 부동산투자회사법 개정이 필요한데 최근 정국 상황으로 국회 논의가 멈춰서면서 언제 법안소위가 열릴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다. 대형 리츠운용사 관계자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미국의 보호무역 정책 등 어느때보다 기업들의 자금 부담과 운영 리스크가 커진 상황"이라며 "기업들의 자금 부담을 줄이고 재투자를 활성화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빨리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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