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행(BOJ)이 24일 6개월 만에 금리를 인상한 배경에는 임금과 물가의 선순환이 기대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출범에 따른 변동성이 당장은 제한적이라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해석된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올해 봄철 노사 임금 협상에서 지난해에 이어 제대로 된 임금 인상을 실시한다고 하는 소리가 많이 들려온다”며 “(경제·물가가) 지금까지 나타내온 전망에 따라 추이하고 있어 앞으로도 (전망 목표가) 실현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은행은 물가가 2% 이상으로 안정적으로 오르고 임금도 함께 상승하는 선순환이 이뤄지면 금리를 추가로 인상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해외 동향에 대해서도 “불확실성이 있지만 국제 금융 자본시장은 전반적으로 안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일본은행은 지난해 7월 물가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물가 상승이 계속돼 추가 인상 시점을 저울질해왔다. 지난해 12월 금리 조정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을 앞두고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는 판단에 시기를 미뤘다. 경제 상황이 좋지 않거나 변동성이 큰 상황에서 자칫 금리를 잘못 올렸다가는 경기, 특히 소비심리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일본은행은 지난해 12월 이후 각 지점 은행의 경기 동향 보고와 경제단체 조사, 기업들의 임금 인상 동향, 트럼프 취임 및 신규 정책에 따른 글로벌 금융시장 영향 등을 면밀히 살폈고 금리를 올릴 환경이 충분히 갖춰졌다고 판단했다. 당초 금리 결정의 핵심 변수였던 트럼프 대통령 취임도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인 것으로 나타나 예정대로 금리정책을 진행했다는 분석이다.
이날 발표된 물가지표도 영향을 미쳤다. NHK는 “지난달 소비자물가(신선식품 제외)는 전년 동월 대비 3.0%나 뛰었다”며 “임금 상승을 웃도는 속도로 물가 상승이 지속될 위험을 줄일 필요가 있다는 판단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주목할 대목은 일본은행이 이날 함께 발표한 2026년도(2026년 4월~2027년 3월) 물가 전망치다. 일본은행은 3개월마다 발표하는 경제·물가 전망 보고서에서 2025년도(2025년 4월~2026년 3월 물가 전망치를 2.4%로, 내년 전망치를 2.0%로 각각 제시하며 지난해 10월 발표한 기존 전망치를 0.5%포인트, 0.1%포인트 상향 조정했다. 다이이치생명연구소의 나가하마 도시히로 애널리스트는 2026년 물가 전망치에 대해 “일본은행이 전망치를 상향 조정한 것은 큰 충격이 없는 한 기준금리를 1% 이상으로 올리겠다는 메시지”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일본은행은 이날 성명을 통해 “현재의 실질금리가 현저히 낮은 수준에 있음을 감안할 때 (물가·경제) 전망이 실현돼가면 계속해서 금리를 인상하고 금융 완화 정도를 조정해나가겠다”고 밝혔다. SMCB닛코증권의 마루야마 요시마사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일본은행이 향후 6개월 간격으로 1% 수준까지 금리를 올릴 것”이라며 “7~9월과 내년 1~3월 추가 인상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와 관련해 우에다 총재는 “향후 인상 페이스나 시점에 대해서는 예단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금융 시장에서는 엔화 가치 상승에 따른 엔캐리 트레이드(저금리로 엔화를 빌려 달러 등 고금리 자산에 투자하는 전략)의 급속한 청산·축소 우려도 제기됐다. 지난해 7월 말 일본은행의 깜짝 금리 인상 직후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이어지면서 8월 첫 주 글로벌 유동성이 위축되고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 증시가 폭락하는 ‘블랙 먼데이’가 연출됐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9월 추산한 글로벌 엔캐리 트레이드 자금은 약 3조3771억 달러(약 4836조 원)이며 이 중 단기간 청산 가능성이 높은 자금은 약 2181억 달러(약 312조 원)에 달한다.
다만 이번 금리 인상이 지난해 7월 수준의 충격을 안기지는 않을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우에다 총재와 히미노 료조 부총재가 이번 회의 전 이례적으로 금리 인상 가능성을 수차례 언급하며 ‘사전 신호’를 시장에 보낸 데다 달러가 강세를 유지하고 있어 청산 규모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현재 엔화 가치가 심각한 수준으로 낮지 않은 만큼 엔캐리 트레이드의 매력도 감소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다만 ‘트럼프 리스크’는 여전히 간과할 수 없는 불확실성이다. 우에다 총재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정책에 대해 “매우 불확실성이 높다”며 “(정책이) 어느 정도 구체화되는 대로 우리의 전망에도 반영해 정책 운영에 활용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금리 발표 전 달러당 156엔대에서 움직이던 엔화는 인상 발표와 우에다 총재 기자회견의 영향으로 한때 154엔대 후반까지 상승했다. 반면 닛케이 평균 주가는 5거래일 만에 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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