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첫날부터 북한을 ‘핵보유국(nuclear power)’으로 지칭하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정상외교를 재시도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는 등 대북 정책의 변화가 감지되는 가운데 권한대행 체제에서라도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특히 곧 이뤄질 한미 외교장관 회담에서 북한 비핵화 등 우리 입장을 각인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외교부는 24일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다시 접촉할 계획이라고 주장한 데 대해 “북한이 한미의 제안에 호응해 대화에 복귀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정부는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북한과의 조건 없는 대화에 열려 있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밝혀왔다”며 “정부는 북핵·북한 문제에 대해 미국 측과 계속 긴밀히 공조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외교부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한미 제안’으로 표현한 것은 미북 대화에서 한국이 배제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로 풀이된다.
이와 별개로 외교부는 트럼프 대통령 발언의 의도를 파악하고 행정부 인사들과 접촉하기 위해 분주한 분위기다. 마코 루비오 신임 미 국무장관이 전날 한미 외교장관 통화에서 조태열 외교부 장관을 워싱턴으로 초청한 만큼 이르면 이달 중에도 한미 외교장관 회담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루비오 국무장관은 이달 15일 상원 외교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대북) 제재는 김정은의 핵 개발을 막지 못했다. 대북 정책을 좀 더 폭넓고 진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북핵 협상에 변화를 예고한 바 있다. 외교부는 이러한 발언의 진의를 파악하고 한반도 비핵화라는 공동의 목표를 유지하기 위해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한미 외교장관 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기본 원칙을 다시 확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성격상 대북 정책이 정립됐다면 먼저 발표를 했을 텐데 지금까지 북한 관련 언급들을 보면 언론의 질의에 답하는 방식으로 이뤄진 만큼 고민 중인 상황으로 보인다”며 “외교장관 회담에서 한미 동맹을 재확인하고 비핵화는 포기하지 않는다는 기본 원칙을 보여줘야 한다”고 언급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 구상에 우리 측 의견을 적극적으로 제시해야 한다는 의미다.
문제는 계엄 사태와 윤석열 대통령 탄핵으로 리더십 부재가 당분간 이어진다는 점이다. 한미 정상회담 전에 미북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마저 제기된다. 박원곤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장은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이 부재하고 국가안보실이 제 역할을 하기 어려운 만큼 외교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며 “트럼프 1기 당시 이도훈, 스티븐 비건 라인을 운용했던 경험을 살려 국무부 외에도 리처드 그리넬 북한·베네수엘라 담당 대통령 특사, 알렉스 웡 백악관 국가안보 수석 부보좌관 등과 최대한 접촉해야 한다”고 밝혔다. 외교부 내 한반도평화교섭본부가 사라진 만큼 그리넬 대사의 카운터파트로 활약할 대북 담당 특사를 지명해야 한다고도 제언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트럼프 대통령의 통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 또한 나온다. 조 장관은 앞서 루비오 장관과의 통화에서 최 권한대행, 트럼프 대통령 간 통화를 포함한 양국의 긴밀한 소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