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산업화를 상징하는 '울산 공업탑'이 건립된 지 약 60년 만에 이전된다. 울산도시철도(트램) 1호선 건설에 따라 공업탑로터리가 회전교차로에서 평면교차로로 전환되면서 교통섬 한 가운데 있는 공업탑이 자리를 잃게 됐다.
울산의 랜드마크이자 대한민국 산업화의 상징인 공업탑은 1962년 울산이 특정공업지구로 지정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높이 25m 규모로 1967년 4월 세워졌다.
정식 이름은 ‘울산공업센터 건립 기념탑’이다. 공업탑은 톱니바퀴 모양의 단상 위에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목표인구 50만명’을 상징하는 5개의 철근 콘크리트 기둥이 세계평화를 상징하는 지구본을 떠받치는 형태로 서 있다. 탑 주변에는 망치를 들고 일하는 형상의 ‘산업역군상’과 미국 자유의 여신상을 본떠 만든 ‘여인상’ 등 2개 동상이 있다.
공업탑은 평양미술학교를 나온 조각가 고(故) 박칠성씨가 만들었는데, 그는 생전 인터뷰에서 “나라가 가난해 여인상을 화강석이 아닌 시멘트로 시공해 마음이 아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 여인상은 2011년 청동상으로 다시 만들어졌다.
이때 지구본도 함께 새단장했으나 1년 6개월 만에 녹물이 흘러내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청동이 아닌 값싼 철로 제작한 것으로 드러났는데, 가격 차이는 6400만 원가량이었다. 이후 박 씨는 재판에 넘겨졌으나 무죄가 선고됐다.
당시 재판부는 “지구본을 철로 제작하기로 결정한 사람이 피고인이라는 직접적인 증거는 하도급자의 진술뿐인데 믿기 어려우며, 하도급자의 견적서 내용도 과장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재판부는 “따라서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인이 철제 공업탑을 만들라고 지시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이 사건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해 무죄”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공업탑은 ‘울산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나 상징물’로 꾸준히 꼽히며 시민의 사랑을 받았다. 급속한 도시 개발이 진행되면서 1980년대 공업탑 주변은 현재 형태처럼 도로 5개가 만나는 로터리가 됐다.
울산의 최대 교통 요충지로 꼽히는 공업탑로터리는 출퇴근 시간대 통행 차량만 시간당 평균 6300∼6500대에 달한다. 특히 교통섬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대형 로터리 특성 때문에 운전이 어렵기로 악명높은 구간으로도 꼽힌다.
실제 공업탑 로터리는 최근 3년간(2021~2023) 152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했으며 이 중 87%(132건)가 진입회전 사고로 로터리 구조의 한계가 드러났다. 또한 지난 2021년 9월부터 올해 9월까지 3년간 공업탑 로터리에서 발생한 보험금을 노린 고의 교통사고 건수가 무려 총 43건으로 전국 교차로 중 가장 많았다.
울산시는 2029년 개통을 목표로 남구 신복로터리∼태화강역 11㎞ 구간에 트램을 건설하는 사업을 추진하면서, 이 노선이 지나는 공업탑로터리를 평면교차로로 전환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현재 공업탑은 이전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다만 울산은 물론 대한민국의 산업화 시대를 상징하는 유물인 만큼 아예 없애기보다는 다른 곳으로 이전해 그 가치를 이어가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된다. 후보지로 울산대공원, 태화강역 광장, 울산박물관 등이 거론된다.
울산시 관계자는 “트램 건설에 따라 현재 공업탑은 시민 의견을 수렴해 자리를 옮기는 방안이 추진될 것”이라며 “다만 이전을 위해서는 시설물 상태나 이전지 등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아서 그 방법이나 시기 등은 아직 결정된 내용은 없다”고 밝혔다.
한편, 앞서 울산의 관문인 신복로터리는 2023년 말 평면 교차로로 전환하며, 중심에 세워져 있던 제2공업탑은 철거됐다. 1973년 12월 준공한 제2공업탑은 일명 ‘유신탑’으로도 불렸으며, 이전 설치가 어렵고 조형적 가치가 낮다는 이유로 철거됐다. 1973년 말 세워져 50년을 넘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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