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서 관료주의 탈피와 규제 혁파 바람이 불고 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근호(1일자)는 동서양, 좌우 진영을 막론하고 각국 지도자들이 탈(脫)규제를 선언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파격적으로 민간 기업인인 일론 머스크를 ‘정부효율부’ 수장에 지명하고 취임 즉시 규제 철폐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프랑스 정부는 강력한 탈관료주의를 약속했다. 중도 좌파 성향의 영국 노동당 정부는 성장 중심의 국정운영 기조에 맞지 않는다며 반독점 경쟁 당국의 수장을 경질했다. 베트남 공산주의 정권마저 정부 기관의 4분의 1가량을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서구 정부의 개혁 움직임은 1980년대 미국·영국의 ‘로널드 레이건-마거릿 대처 혁명’ 때보다 클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한국의 역대 정부는 임기 초에 규제 개혁을 약속했지만 ‘보여주기’식에 그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임기 말로 갈수록 이해관계자들의 반발에 밀려 개혁 의지가 떨어지고 외려 규제 건수가 늘어나기를 반복해왔다. 그 결과 국제기관들의 평가에서 한국은 정부의 기업 활동 개입, 노동시장 경직성 등에서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붉은 깃발 규제들을 뿌리 뽑겠다”던 문재인 정부 시절 더불어민주당은 ‘타다 금지법’까지 만들어 혁신 서비스를 고사시켰다. 지금도 민주당은 ‘반기업 정서’에 편승해 상법 개정안, 국회증언감정법 등 기업 경영을 옥죄는 법안들을 밀어붙이고 있다.
규제 개혁은 예산을 거의 쓰지 않고도 기업 투자와 고용 창출을 유도하고 신성장 동력을 점화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정책 수단이다. 한국처럼 자본·노동력 투입이 한계에 이른 고소득 국가일수록 규제 완화는 경제성장률 제고에 더 큰 도움이 된다. 이제라도 여야는 경직된 주 52시간 근무제, 대형마트 영업 제한 등 기업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규제 사슬들을 과감히 혁파해야 한다. 기술 패권 경쟁에서 낙오되지 않으려면 법인세·상속세 등 세제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합리적으로 개편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노동·교육·연금 개혁으로 경제 체질을 개선해야 ‘2년 연속 1%대 성장률’이라는 초유의 저성장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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