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겨울방학이 돼 오랜만에 귀국하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정치 불안이 한 치 앞을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내수 침체는 이어지고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함께 대외적 여건도 쉽지 않아 한국 경제가 과연 버텨낼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빈자리가 없던 단골 식당은 파리를 날리고 붐비던 길거리는 한적하기만 하며 택시는 잘만 잡히는 등 한국을 떠나 있던 몇 달 사이 체감 경기가 이렇게까지 곤두박질쳤나 하는 허탈감에 사로잡혔다.
사실 지난해 4분기 성장률 전망치 0.4%를 한국은행은 0.2%,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그 이하로 하향 조정하는 등 최근의 경제지표는 어두워지고 있다. 이는 대외적인 요인도 있지만 비상계엄 사태 이후의 정치 불안으로 안 그래도 좋지 않은 소비·내수·건설 경기 등 지표가 예상보다 더 떨어지고 경제 심리가 더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실제 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밑돌아 불황을 나타내는 국내총생산(GDP) 갭이 확대되고 있다.
이런 사정을 고려한다면 정책 당국은 금리를 내리거나 재정지출을 늘리는 경기 부양에 하루빨리 나서야 한다. 그런데도 1월 16일의 금융통화위원회는 금리를 3.00%에서 동결했다. 유럽 및 캐나다를 비롯해 1월부터 금리 인하를 지속하는 가운데 한국은행은 3연속 인하까지 할 수는 없었다. 흔들리는 펀더멘털과 정치 불안 속에 원·달러 환율이 흔들리면서 대외적 여건을 잠시 관망할 필요가 있기에 금리를 내려야 할 때 못 내리고 있다. 더구나 트럼프2.0 리스크, 딥시크 충격, 미 연준 금리 동결 등의 악재로 환율 변동성은 더 커질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방안은 추가경정예산을 통한 경기 부양뿐이다. 지난가을부터 추경의 필요성과 방법에 대한 논쟁이 이어져 작금의 상황은 그 필요성을 논하는 단계가 이미 지났다. 지난 2년간 세수 결손이 각각 56조 원과 30조 원 이상을 기록했다. 올해는 경제성장률 2.05%에 기초해 재정수지를 추정했지만 성장률이 이미 1.5% 정도로 예상되면서 대규모 세수 결손이 예상된다. 즉 경제를 살리기 위한 추경은 고사하고 세수 결손으로 인한 적자 추경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최근 추경을 위한 정치 환경도 우호적으로 바뀌고 있다. 그동안 재정 건전성을 금과옥조로 여겨왔던 정부나 여당도 추경 가능성을 열어뒀고 야당은 지난주 민생 지원금이 추경에 걸림돌이 된다면 민생 지원금을 포기하겠다고 했다. 더구나 물가를 책임지고 있는 한은마저 추경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나섰다.
즉 정쟁의 여지는 있으나 모처럼 정부, 여야 및 한은 간에 추경의 필요성에 공감대가 형성되고 경제 살리기에 나서는 모양새가 마련됐다. 이에 추경의 정책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정부 및 정치권은 최근의 정치 불안 사태에 대한 모든 책임을 통감하고 더 이상 정쟁을 앞세우지 말고 오로지 국민과 우리나라 경제만을 바라보고 추경을 집행해야 한다.
둘째, 최근 3년 연속 적자 예산을 편성하고 있는 마당에 또 한 번의 추경은 재정 건전성에 큰 부담을 주기 때문에 어디에 왜 얼마나 무엇을 위해 쓰는지 추경의 성격을 명확히 해야 한다.
셋째, 비상시국의 정책 효과 극대화를 위해서는 과거에 집행되지 않았던 정책이 예상치 못한 시점에 집행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 정교한 정책 설계와 집행이 요구된다.
넷째, 내수 진작 효과와 승수 효과 극대화를 위해 경제 살리기의 ‘마중물’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테면 민생 지원금 10만 원이 지원될 때 본인 부담금 10만 원이 대응 투자 개념으로 요구된다면 소기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다섯째, 보편적 지원을 지양하고 선별적 지원으로 이뤄져야 한다. 추경은 당연히 어려운 자영업자나 소기업에 신속히 선별적으로 집행해야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추경은 불가피하다. 경기가 장기 침체의 늪으로 빠져든다면 더 많은 경제주체들의 고통, 주요 산업의 경쟁력 약화, 중산층의 붕괴, 세수 결손이 뒤따르게 된다. 신속하고 효과적인 추경의 집행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정부 및 정치권의 엄중한 역할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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