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005930) 회장의 ‘부당합병’ 혐의 사건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한 것은 원심과 동일하게 제출된 증거만으로 삼성물산(028260)과 제일모직의 합병 목적이 경영권 강화와 승계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심에서 최대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 삼성바이로직스 회계 부분 관련 행정법원 판결에 대해 재판부는 이를 재량권 남용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서울고법 형사13부(백강진·김선희·이인수 부장판사)는 3일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 회장 등 14명에 대한 선고기일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삼성의 미래전략기획실이 경영권 승계를 목적으로 이 회장에게 유리한 합병 비율과 시점을 선택해 결정하고 이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에 하달했다는 검사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미전실이 사안을 사전에 검토했다는 것에 대해 이를 합병에 관한 구체적이고 확정적인 검토로 보기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합병 검토 경위에 대해 증인의 진술 신빙성이 인정되며 물산 측 검토가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합병 비율 적정성 검토 보고서는 안진의 제안으로 시작됐으며 삼성 측이 주가 기준 합병 비율에 맞출 것을 요구했다고 볼 수 없다”며 “안진이 평가 과정에서 주가를 염두에 두고 평가했다고 해도 조작이라 할 수 없으며 보고서의 개별 항목이 조작됐다고도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합병 계약 이후 주주총회 승인 단계에서 삼성물산의 자기주식을 전격 매각한 것에 대해서도 위법행위로 보지 않았다. KCC에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겠다는 묵시적인 약속이 인정되지 않았으며 합병 성사를 위해 KCC에 회사의 자기주식을 매각한 것 자체가 부정하다고 볼 수 없다는 취지다.
국민연금을 상대로 허위 정보를 제공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부당한 영향을 행사하도록 유도했다는 혐의도 무죄로 봤다. 재판부는 “삼성 측이 국민연금에 제공한 안진 합병 비율 적정성 검토 보고서 및 합병 시너지 수치가 허위라고 볼 여지가 없다”며 “승마 지원을 통해 대통령의 영향력에 기한 국민연금의 찬성 의결권 행사를 ‘유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검사 측이 이번 항소심에서 중점적으로 유죄를 입증하기 위해 진행한 부정 회계 부분도 무죄로 판단했다. 검찰은 지난해 8월 선고된 증권선물위원회의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삼바) 제재 처분에 대한 서울행정법원 1심 판결을 예비적 공소 사실로 추가하며 이 부분의 유죄 입증에 주력했다. 당시 행정법원은 “2015년 재무제표에서 삼바가 삼성바이오에피스에 대한 지배력 상실 회계 처리를 옛 삼성물산 합병일인 2015년 9월 1일 이후로 검토한 점은 재량권 남용에 해당한다”며 일부 회계 부분을 부정 혐의로 인정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예비적 공소 사실과 관련해 이 사건의 콜옵션은 2015년도에 내가격 상태로 인한 효익이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볼 여지가 크다”며 “지배력 상실 회계 처리가 재량을 벗어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부 피고인들이 특정한 의도 혹은 방향성을 드러내거나 문서를 조작하는 등의 부적절한 행위가 개입됐지만 그 처리 결과는 로직스의 에피스에 대한 ‘지배력 상실’이라는 경제적 실질에 부합한 것이었다”며 “검사의 주장과 달리 전체적으로 그 판단에 이르는 근거와 과정에는 최소한의 합리성이 존재한다”고 판시했다.
2014회계연도 삼바 재무제표 회계 분식에 대한 지적도 “콜옵션 공시에 관해서는 공시 내용이 다소 미흡하지만 이에 대해 피고인들의 과실을 넘어 고의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증명이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이전에 제출된 증거들과 함께 항소심에서 새롭게 제출된 증거들에 대해서도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검사 측은 항소심에서 2300여 개의 증거를 추가로 제출해 증거능력 입증에 주력했다. 재판부는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에피스 서버 등이 압수수색 과정에서 탐색 및 선별 절차가 없었고 실질적인 참여권 보장이 없었다고 판단했다. 또한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의 휴대폰에 저장된 전자정보도 선별 절차가 없었으며 이에 따른 2차적 증거 역시 적법절차의 실질적 내용을 침해해 수집됐다고 봤다. 검찰이 2심에서 새롭게 제출한 증거인 서 모 씨의 외장하드 등도 압수수색 과정에서 절차 및 실질적 참여권 보장이 없었다고 해석했다. 재판부는 “형사 사법의 정의 실현을 위해 예외적으로 증거능력이 인정돼야 한다는 사정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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