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연일 ‘실용주의’를 내세우는 행보를 하고 있다. 이 대표는 3일 민주당 주최로 열린 반도체특별법 토론회에서 “특정 산업의 연구개발(R&D) 분야 전문가들이 예외로 몰아서 일하게 해주는 게 왜 안 되냐 하니 할 말이 없더라”고 말했다. 이 대표의 발언에 대해 주 52시간 근무제 완화 등을 담은 반도체특별법을 전향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그는 또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캐나다·멕시코 등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부과 방침을 거론하며 “국회에 통상특별위원회를 만들어 초당적으로 대비하자”고 제안했다.
트럼프발(發) 관세 전쟁에 중국 스타트업의 생성형 인공지능(AI) 모델 ‘딥시크’ 개발 충격까지 더해진 상황에서 제1야당 대표가 전향적 자세로 경제를 챙기는 모습을 보인 것은 반가운 일이다. 이 대표는 지난달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이념과 진영이 밥 먹여주지 않는다”며 ‘성장’을 외쳤다. 당 기본사회위원회 위원장직 사퇴 의사도 주변에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자신의 핵심 브랜드인 ‘기본사회’를 정책 후순위에 두겠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영국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도 “민주당의 주된 가치는 실용주의”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동안 언행이 일치하지 않았던 이 대표의 변신 시도에 대해 신뢰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많다.
이 대표는 지난해 7월 당 대표 출마 때 “성장 회복과 지속 성장이 ‘먹사니즘(먹고사는 문제 해결)’의 핵심”이라고 했지만 말잔치에 불과했다. 이후 민주당은 노동계 등 지지층을 의식해 노란봉투법, 상법 개정안, 국회증언감정법, 양곡관리법 등 반기업·반시장 법안들을 밀어붙였다. 최근 이 대표의 변화가 민주당과 자신의 지지율 정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중도층으로 외연을 확장하려는 정략적 접근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 대표가 진심으로 실용을 추구한다면 2월 임시국회에서 ‘주 52시간 근무제 완화’를 포함한 반도체특별법의 조속 처리에 협력하는 등 경제·민생 살리기를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반도체특별법에서 ‘주 52시간 근무제 예외 적용’을 제외한다면 법안을 통과시키더라도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