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필자의 연구실을 방문한 중국 학자가 첨단 기술의 상업화에 관한 한 5년 내 ‘게임오버’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직원 137명을 둔 2년 차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 이야기를 꺼냈다. 실제로 5분 만에 가입해 사용해보니 민감한 중국 정보에 대한 해답은 거부했지만 다른 중국 정보의 축적과 분류는 매우 체계적이었고 효능감도 있었다. 1월 출시한 딥시크의 추론형 AI 모델인 ‘R1’은 엔비디아 H100 대신 중국 수출용으로 성능을 낮춰 출시한 H800을 그래픽처리장치(GPU)로 사용해 개발 비용을 챗GPT의 10분의 1 수준으로 낮췄다. 여기에 ‘기술 독점은 혁신의 적’이라고 밝히고 오픈소스를 제공해 생성형 AI 분야의 지각을 흔들고 있다. 많이 투자할수록 성능이 확연히 개선되는 문법이 파괴된 것이다.
이러한 중국의 혁신 사례는 이미 제조 AI, 양자역학, 통신장비,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에너지 AI 등의 영역에서 수시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미국의 기술 통제를 중국적 방식으로 극복하고 미국식 혁신 경로를 우회할 수도 있다는 징후다. 여기에는 미국의 ‘대중 제재의 역설(2024년 6월 25일 자 칼럼)’로 인한 ‘강요된 기술 자주화’ 전략이 있다. 중국은 AI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공동 프로젝트, 연구 조직 재편, 각종 융복합 실험실을 통한 인재 배양과 파격적 해외 인재 유치, 4700개 AI 기업이 만드는 창업 붐 등 생태계 구축에 총력을 기울여왔다. 특히 지금 여기서 밀리면 강대국의 꿈을 한동안 접어야 한다는 절박감과 위기의식이 지도부에 자리 잡고 있다.
올해는 중국이 2015년 ‘중국제조 2025’를 발표한 지 20년이 되는 해다. 그동안 많은 한계가 있었지만 반도체와 소프트웨어 영역 등을 제외한 다른 분야는 중국식 혁신만으로 세계 1·2위를 다투는 기염을 토했다. 이러한 여세를 몰아 2030년까지 AI 산업에 1900조 원을 투자하고 연구 인력만 40만 명을 확보할 예정이다. 여기에 엘리트 청년 과학자들의 ‘한번 해보자’라는 열정도 실험실의 불을 밝히고 있다. 딥시크 창업자인 량원펑도 40세의 공학도 출신이고 핵심 기술을 만든 뤄푸리도 1995년생 패기만만한 토종 여성 엔지니어다. 이에 비하면 우리는 2027년까지 65조 원의 투자 계획을 수립했지만 이 분야의 관건인 연구 인력 확보는 2만여 명에 불과하다. 정보기술(IT) 강국 한국은 AI 지각생임에도 손에 잡히는 대책은 없었고 그 와중에 미래 과학기술 인재는 의과대학이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33년 전인 1992년 이맘때 중국의 총설계사로 불리던 덩샤오핑은 개혁·개방의 심장인 남부 지역을 시찰하면서 발상의 대전환을 요구한 바 있다. 그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구분하는 기준은 시장과 계획의 유무가 아니다” “우편향을 경계해야 하지만 중요한 것은 좌편향을 방지하는 것이다” “전족한 여인처럼 행동하지 말고 대담하게 실험하라”고 역설하면서 먹고사는 문제를 제약하던 이념을 과감하게 걷어냈다. 당시 톈안먼 사건 직후라 덩샤오핑의 발언을 가짜뉴스로 믿는 사람도 있었지만 시대정신에 올라타 금기의 영역을 깨고 패러다임을 바꿔야 다른 길을 갈 수 있다는 덩샤오핑의 변혁적(transformational) 리더십 때문에 가능했다.
리더십 연구자인 버나드 배스는 변혁적 리더는 비전을 제시하고 동기를 부여하는 ‘이상적 영향’, 구성원의 가치관·신념·기대를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지적 자극’, 구성원의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영감적 동기부여’, 각자의 처지를 고려한 맞춤형 방안을 제시하는 ‘개별적 배려’의 요소를 갖춰야 한다고 했다. 지금 우리는 이러한 변혁적 리더십을 통해 미래 산업의 생태계를 촘촘하게 엮고 자원을 선택하고 집중해야 하지만 계엄과 탄핵 국면에서 극단의 정치가 나타나는 등 시계 제로다. 심지어 중국을 숨 가쁘게 추격해야 하는 후발 주자 처지가 됐지만 여전히 친미·친중의 프레임에 깊이 갇힌 채 좀처럼 미래 공론장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다. 우리 실력으로 미래 차선을 바꿔 앞차를 추격하면 좋겠지만 그것이 쉽지 않다면 곡선주로에서 앞차를 추월하는 모험과 승부수를 거는 변혁적 리더십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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