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년 전 뉴욕에서 ‘모던 타임스’가 개봉됐다. 러닝타임 87분의 이 무성영화는 흥행에서도 큰 성공을 거뒀다. 주인공 찰리 채플린은 각본과 음악은 물론 제작까지 담당했다. 영화는 그에게 엄청난 명성과 함께 공산주의자라는 혐의까지 안겨줬다. 산업화의 부작용에 대한 예리한 비판이 그 이유였다. 그 때문에 채플린은 매카시즘이 극성에 달했던 1952년 미국에서 추방됐다.
영화는 지하철역에서 쏟아져 나오는 노동자들로 시작된다. “빨리빨리”를 외치는 공장주의 재촉에 시달리던 주인공은 나사 모양만 보면 스패너를 들고 달려든다. 길 가던 여성의 원피스에 달린 단추까지 조이는 이상행동 때문에 체포된 주인공은 정신병원으로 이송된다. 퇴원했지만 해고된 주인공은 트럭에서 떨어진 붉은색 깃발을 운전사에게 돌려주기 위해 달려가다가 공산주의자로 몰려 경찰서에 끌려간다. 유치장에서 풀려난 주인공은 길거리를 배회하다 고아가 된 소녀와 만난다. 고아원 입소를 거부하던 소녀와 떠돌이 주인공은 경찰과 경찰서를 매개로 체포와 석방, 이별과 재회를 반복한다. 우여곡절 끝에 두 사람이 카바레에 취직하면서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관객들의 기대와 달리 소녀의 정체를 알게 된 경찰관이 소녀를 체포하려고 하면서 영화는 다시 위기로 치닫는다. 영화는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한 소녀와 떠돌이 주인공이 새벽길을 함께 걸어가는 장면에서 끝난다.
스크린 전체에서 자본주의의 획일적 지배, 인간의 소외, 자유와 꿈을 위한 저항의 몸짓이 속도감 있게 그려진다. 효율 만능의 사회는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을 통해 묘사된다. 인간은 철저한 분업 속에서 연대감을 상실해버린 무력한 개인들로 그려진다. 자주 등장하는 경찰은 비가시적인 자본주의 질서의 폭력성을 보여주는 장치다. 두 주인공은 문제의 근원적 해결을 시도하지 않는다. 이른 새벽에 길을 떠나는 장면을 통해 어쩌면 현재의 삶과는 다른 길이 있을지 모른다고 암시할 뿐이다. 결론은 관객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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