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 조기 대선 가능성과 맞물려 개헌론이 불붙고 있다. 대권 경쟁에서 1강(强)으로 꼽히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개헌 논의에 선을 긋는 반면 당내 경쟁 주자를 비롯한 여당인 국민의힘은 정치 개혁을 명분으로 권력 구조 개편 논의에 나서는 양상이다.
5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민의힘은 6일 비상대책위원회 의결을 거쳐 국회 부의장이자 당내 최다선인 6선의 주호영 의원을 당 개헌특별위원회 위원장에 임명하고 다음 주 출범식을 열 계획이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현재 특위 위원을 선정하는 단계”라며 “특위가 만들어지면 우선 당 자체 개헌안을 만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개현 문제에 비교적 신중한 입장을 보였던 여당은 윤석열 대통령이 구속된 이후 조기 대선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개헌론에 불을 댕기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 폐지를 내세워 12·3 비상계엄 사태를 둘러싼 여권 책임론에서 벗어나는 한편 거대 야당의 입법권 남용을 막는 정치 개혁 필요성을 부각하려는 계산이 깔렸다는 분석이다. 여당의 잠재적 대선 후보인 안철수 의원은 “한국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 권한의 5배를 갖고 있는 ‘제왕적 대통령’”이라며 “2026년 6월 지방선거에서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를 함께 진행해 ‘권한 축소형 대통령 4년 중임제’를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나경원 의원의 경우 “제왕적 의회 일당독재를 바로잡는 게 먼저”라며 국회 권한을 견제할 장치를 개헌을 통해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국민의힘 소속 광역지방자치단체장들도 개헌 논의에 군불을 지피며 중앙정치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12일 국회에서 ‘87체제 극복을 위한 지방분권 개헌 토론회’를 열어 중앙집권적인 국가 체계에서 과감한 지방분권으로 재편하는 내용의 개헌을 강조할 예정이다.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장 모임인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장을 맡고 있는 유정복 인천시장은 이날 국회에서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나 정국 안정을 위한 궁극적 방안으로 개헌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유 시장은 이달 중 협의회 차원에서 지방분권 강화를 골자로 한 자체 개헌안을 발표할 방침이다.
비명계(비이재명)도 개헌론을 제시해 정치적 공간을 확보하려는 시도에 나섰다. 잠행을 이어온 이낙연 전 총리는 10일 광주에서 ‘국민과 함께 여는 제7공화국’ 시국 토론회를 열어 활동을 재개한다. 김동연 경기도지사, 김부겸 전 국무총리,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이광재 전 국회 사무총장 등도 개헌 추진에 목소리를 보태고 있다.
정작 개헌의 ‘키’를 쥔 이 대표와 민주당은 모르쇠로 일관하는 모양새다. 윤 대통령 수사·탄핵에 집중해 조기 대선 정국을 만들어야 할 시기에 개헌 논의가 불붙으면 정권 교체론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이를 노린 여권은 이 대표의 개헌 논의 동참을 압박하고 있다.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은 6일 자신이 개최하는 ‘국가 대개조를 위한 개헌 토론회’에 이 대표를 초청하며 “실사구시의 진실된 실천을 위해서 개헌에 나서달라”고 촉구했다. 권 원내대표는 “역대 국회의장, 원로 의원들이 중심이 돼 개헌에 불을 지피고 있기 때문에 여론이 뒷받침되면 이 대표도 개헌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