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기업들이 지난 10년간 연구개발(R&D) 투자를 11배 이상 늘리며 ‘기술 굴기’에 매진하는 동안 우리 기업들의 투자액은 고작 2배가량 증가하는 데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상공회의소가 5일 글로벌 R&D 투자 2000대 기업을 분석한 결과 2023년 기준 미국·중국 등 기술 선진국과 우리 기업들의 R&D 투자 격차는 10년 새 크게 벌어졌다. 중국의 R&D 투자는 2013년 한국보다 적은 28조 원 수준에서 약 324조 원으로 11.5배 급증했다. 미국은 같은 기간 투자액을 2.8배 늘려 2023년에 무려 800조 원을 R&D에 쏟아부었다. 반면 우리의 투자액은 10년간 2.2배 증가해 약 64조 원에 그쳤다. 미국·중국의 증가액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고 증가 속도는 대만(2.7배)보다도 더디다. R&D 2000대 기업에 포함된 기업 수는 그 사이에 중국이 405개 급증했으나 우리는 외려 14개 감소했다. 그나마 투자를 늘린 것이 몇몇 대기업들뿐이라는 의미다.
R&D는 미래 국가 경쟁력의 원천인 기술 확보를 위한 필수 조건이다. 중국이 ‘딥시크 쇼크’로 전 세계를 강타하고 2022년부터 첨단산업 수출 경쟁력에서 한국을 역전한 배경에는 10년간의 폭발적인 R&D 투자가 있었다.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은 이미 R&D 투자에서 ‘양강’ 구도를 형성한 미중 주도로 전개되고 있다. 우리 기업들이 계속 지금처럼 웅크리고 있는다면 글로벌 기술 격변에 적응하지 못한 채 도태될 수밖에 없다. 한때 글로벌 가전 시장의 강자였지만 기술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70여 년 만에 TV 사업 철수까지 검토하고 나선 일본 파나소닉의 교훈을 새길 필요가 있다.
공격적인 투자 없이는 미래의 첨단산업 지형에서 한국이 설 곳을 찾을 수 없다. 급변하는 산업 환경에 대응하고 기술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기업들이 R&D와 인재 양성에 적극 나설 수 있도록 정부와 국회가 판을 깔아줘야 한다. R&D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확대 등 세제·예산·금융 전방위 지원을 서두르고, 전문 인력에 대한 주 52시간 근무 예외 적용 조항을 담은 반도체특별법 등 규제 혁파 입법에도 속도를 내야 한다. 연구 성과가 기술 사업화와 산업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혁신 생태계도 활성화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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