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의 겨울 ‘필수템’으로 자리잡은 후리스. 후리스하면 유니클로라는 브랜드가 원조인 것 같지만 후리스의 원조는 미국의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다. 그러나 가성비를 앞세운 유니클로가 후리스를 선보이면서 결과적으로 ‘유니클로=후리스’가 됐다.
전 세계 어느 매장이나 시내 한복판에 자리잡은 유니클로 의류의 가격은 과연 매장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저렴하다. 과연 수지타산이 맞을까 싶지만 1984년 창립한 이래 부침을 거듭하면서도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SPA브랜드로 자리잡았다.
책은 단카이 세대(1947년에서 1949년 사이에 태어난 일본의 베이비 붐 세대로 1970년대와 1980년대 일본의 고도성장을 이끌어 냄)로 명문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백수’로 지내던 일본 중소기업 대표의 장남 야나이 다다시가 어떻게 유니클로를 창업하고, 글로벌 최대의 SPA 브랜드로 키워냈는지를 방대한 양으로 담아냈다.
우선 유니클로의 모회사인 패스트리테일링의 회장인 야나이 다다시의 청년 시절을 빼놓고 유니클로의 탄생을 말하기는 어렵다. 그는 하숙집 주인은 그에게 ‘종일 잠만 자는 잠꾸러기’라는 별명을 붙여 줄 정도도 무기력했다. 그가 대학에 입학했던 1967년은 미국에서는 베트남 반전 운동이 휩쓸었고 일본에서도 학생운동이 활발했지만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무기력하기만 했던 그에게 대학 시절 가장 도전적인 경험은 세계 일주였다. 야나이는 아버지에게 세계 일주를 하고 싶다고 털어 놓았다. 아버지를 존경하지만 어려워서 멀리했던 그이지만 세계일주를 위해 아버지에게 손을 내밀었던 것이다. 비행기 표 값만 200만 엔에 달하는 비용을 아버지는 흔쾌히 허락했다. 당시 일본 대졸 신입 사원 평균 월급이 3만6000엔이던 시절이다.
꿈이 없는 청년 야나이는 미국에 대한 호기심,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궁금증으로 미국을 시작으로 유럽 등 세계를 일주했다. 그런데 그가 동경했던 미국이 규모는 크지만 속이 텅텅 빈 나라라는 인상이 강했다고 한다. 동경과 실망 이 모든 것은 어쩌면 유니클로가 탄생할 수 있었던 ‘트리거’라고 할 수 있다.
졸업 후 백수로 지내던 야나이가 쇠락한 탄광촌이 야마구치현 우베시 상점가에 자리잡은 아버지의 양복점 ‘오고리상사’를 물려 받으면서 유니클로로 변신을 하고 성공 가도를 달릴 수 있던 것은 맥도날드의 창업자 레이 크록을 비롯해 피터 드러커 등의 경영 전략을 따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 경영의 구루의 전략을 따랐기에 오고리상사는 오랫동안 일한 직원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했다. 가장 오래 근무한 직원을 비롯해 하나 둘 직원들이 떠났고, 결국 한 명만이 남았다.
홀로 남게 된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마침내 오고리상사를 대대적으로 변화시킨다. 맞춤 기성복의 시대가 갔음을 간파하고 ‘라이프웨어 시대’를 준비한 것. 그리고 ‘라이프웨어’ 브랜드 유니클로의 시작에는 그가 가장 존경했던 경영자 중 하나인 레이 크록의 정신을 반영했다. 일하는 방식을 효율적으로 개선해 성공한 맥도날드의 성공 공식을 그대로 대입한 것이다. 유니클로의 시그니처인 ‘어느 옷에나 매치가 가능한 기본적인 디자인과 컬러’는 가장 효율적인 생산·경영 방식이 적용된 ‘최적의 SPA 브랜드'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일본 의류 브랜드이지만 포드 시스템이나 맥도날드 시스템 등 효율성이 극대화된 미국 기업의 느낌이 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책은 이처럼 야니아 회장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로 감동을 선사한다. 그러나 유니클로의 성공 신화만 기록한 것은 아니다. ‘블랙기업’ 논란은 물론, 거의 모든 SPA 브랜드가 책임이 있는 남아시아 저개발 국가의 의류 산업 노동 착취 문제에서도 유니클로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도 짚어 균형감각을 맞췄다. 3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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