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동료인 A·B씨 사이 수상한 금전 거래 내역이 드러난 건 우연한 대화였다. 한 장애인 단체가 A씨를 상담하는 과정에서 그의 월급 가운데 일부가 B씨 계좌로 옮겨졌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A씨가 계좌 이체 방법을 모르는 만큼 스스로 이뤄지기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A씨 휴대전화기마저 B씨가 가지고 있었다. 해당 단체는 수상한 정황을 파악하고 곧바로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겉보기에는 B씨가 A씨를 속여 금전을 뜯어낸 단순 사기 사건이었다. 경찰은 수사를 거쳐 검찰에 B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하지만 뜻밖의 변수가 등장했다. A씨가 경찰에 “B씨에게 단순히 빌려준 돈으로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는 수사 과정에서 줄곧 B씨가 주장한 내용과 같았다. 결국 구속영장은 법원에서 기각되고, 경찰은 B씨를 불구속 상태에서 검찰에 송치했다.
자칫 불구속 기소로 마무리될 뻔했던 사건은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면서 반전을 맞았다. A씨가 “경찰 조사 과정에서는 B씨가 시키는 데로 말을 했다”는 사실을 털어놨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비슷한 나이로 2년 동안 세탁 관련 기업에서 함께 일했다. 이들 기간 중 쌓은 친분을 활용해 A씨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진술하도록 B씨가 회유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검사·수사관이 수사 과정에서 A씨와 대화하면서 ‘라포(신뢰관계)를 형성한 것이 이같은 결정적 진술이 나왔다
사건을 맡은 손아령(변호사시험 11회) 창원지검 진주지청(당시 제주지검 형사3부) 검사는 “B씨는 빌린 돈이라고 주장했지만, A씨로부터 금전을 대여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었다”며 “A씨가 이체는 물론 본인이 대출을 받았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A씨 재무 상황이 좋지 않은데 마이너스 통장으로 돈을 빌려줬다는 자체가 앞뒤가 맞지 않았다”며 “온라인 및 전화 상담을 통한 대출이 이뤄진 과정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았다”고 했다.
검찰에 따르면 A씨 명의로 대출이 이뤄진 건 2번이다. 처음에는 은행 전화 상담을 통해 대출이 이뤄졌다. 두 번째는 A씨 마이너스 통장에서 B씨 계좌로 돈이 옮겨졌다. A씨 신분증 등을 이용, 온라인 마이너스 통장 대출이 이뤄지게 한 뒤 B씨가 본인 계좌로 이체시켰다는 것이 검찰 수사 결론이다.
특히 검찰은 은행에서 제출받은 전화 상담 녹음 파일에서 결정적 증거를 찾았다. 대출 상담 전화가 이뤄진 건 A씨 휴대전화기였다. 하지만 녹음 파일 속 목소리는 A씨가 아닌 B로 드러났다. B씨가 2021년 11월~2023년 1월까지 계좌 이체·대출 등 수법으로 A씨로부터 뜯어낸 금액은 총 3300만원이다. 동년배로 3~4년 동안 함께 근무한 친분과 함께 A씨가 지적 장애가 있다는 점을 돈을 착취할 수단으로 악용한 셈이다.
검찰은 피고인 조사 3회와 피해자 면담 3회 등 적극적인 보완 수사로 B씨를 구속했다. 이후 올 1월 초 B씨에게 사기, 사전자기등록위작, 위작사전자기록등행사 등의 혐의를 적용, 구속 상태에서 재판에 넘겼다. 법원도 같은 달 B씨에게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장애인을 대상으로 벌인 파렴치한 범행이지만, 피해금액 일부가 변제된 점을 고려했다는 게 법원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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