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연방정부 슬림화 정책에 제동을 걸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지출 감축 등을 이유로 조직과 인력을 축소하는 구조조정에 나섰지만 민주당과 연방 공무원 노조의 반발에 차질을 빚고 있다. 정부효율부(DOGE) 수장 일론 머스크의 막강한 권한 행사에 대한 견제도 커지면서 반(反)트럼프 전선이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미국 뉴욕 남부 연방법원은 8일(현지 시간) 머스크의 DOGE에 부여된 재무부 결제 시스템 접속 권한을 일시적으로 차단했다. 폴 엥겔마이어 판사는 “DOGE의 접근이 허용될 경우 민감한 정보가 공개될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며 “이전보다 해킹에 더 취약해질 위험이 높다”고 했다. 앞서 뉴욕·캘리포니아 등 민주당 소속 19개 주 법무장관들은 7일 트럼프 행정부가 DOGE에 재무부의 핵심 결제 시스템 접근을 허용한 것은 연방법 위반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을 주도한 레티샤 제임스 뉴욕주 법무장관은 성명을 통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인 머스크와 그가 이끄는 이 비선출 집단(DOGE)은 이러한 정보를 가질 권한이 없다”고 비판했다. 긴급 임시 명령으로 내려진 이번 조치는 14일로 예정된 법원 심리 때까지 유지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번 조치에 대해 억만장자와 DOGE가 연방정부 비용을 삭감하기 위해 지원금을 샅샅이 뒤지려는 움직임에 타격을 입혔다고 평가했다. 머스크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직후 DOGE를 통해 정부 지출 삭감, 인력 감축에 나서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재무부의 핵심 결제 시스템을 통해 연방기관 자금 지급에도 개입하려 한 것으로 전해졌다.
법원은 해외 원조 기구인 국제개발처(USAID) 폐지를 추진 중인 DOGE의 계획에도 제동을 걸고 나섰다. 앞서 7일 워싱턴DC 연방 지방법원 칼 니컬스 판사는 트럼프 행정부가 USAID의 직원 중 2200명을 유급 행정 휴가로 처리한다는 방침과 해외에 파견된 직원 대부분을 한 달 내로 국내로 소환한다는 계획을 최소한 14일까지 중단하라고 명령했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가 1만 명이 넘는 USAID 직원을 290명까지 줄일 계획인 것으로 전해지자 미국공무원연맹 등은 정부를 제소하고 USAID 예산 복구 및 조직 해체를 중단토록 하는 명령을 촉구했다.
이날 영국 BBC는 트럼프 행정부의 조직 축소 방침에 따라 DOGE가 교육부와 USAID 다음 표적으로 소비자금융보호국(CFPB)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2011년 설립된 CFPB는 연방정부에 소속된 독립기관으로 은행과 금융기관을 규제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과 머스크 사이에 균열이 감지되고 있다는 분석이 잇따른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일 정상회담에서 ‘결단의 책상’ 뒤에 앉은 머스크의 모습을 담은 시사 주간지 ‘타임’의 표지 사진에 대한 질문을 받자 “타임지가 아직도 영업 중이냐”라고 답했다. 이를 두고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은 즐거워 보이지 않는다”라면서 불편한 심기를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표시에 실린 대통령 전용 책상은 트럼프 대통령이 플로리다주 사저 마러라고 리조트에 복제품을 갖다 놓을 정도로 애착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스티븐 배넌 당시 백악관 수석전략가가 타임지 표지에 등장하자 화를 냈고 같은 해 배넌은 백악관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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