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지역화폐를 제외하고 민생과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제안했다. 예산 조기 집행 이후 추경을 논의하자는 기존 방침에서 선회해 추경 시기에 제한을 두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겨냥해서는 “국정 위기 유발자”라며 맹공을 퍼붓는 한편 과거 발언을 소환해 최근 ‘우클릭’ 전환에 대한 진정성을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주 52시간 근로제 예외를 포함한 반도체특별법의 조속한 처리와 분권형 개헌도 언급했다.
권 원내대표는 11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우리 당은 추경 논의를 반대하지 않는다”면서 전제 조건으로 올해 예산안 일방 삭감에 대한 야당의 대국민 사과와 원상 복원을 내걸었다. 특히 “지역화폐와 같은 정쟁의 소지가 있는 추경은 배제하고 내수 회복과 취약 계층 지원,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산업·통상 경쟁력 강화를 위한 추경으로 편성해야 한다”며 ‘이재명표’ 지역화폐를 위한 추경 편성에는 거듭 선을 그었다.
전날 이 대표가 최소 30조 원 규모의 추경을 제안한 데 이어 권 원내대표도 조건부 추경 검토를 공식화하면서 ‘조기 추경’ 논의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앞서 여당은 올해 본예산을 1분기에 조기 집행한 후 필요시 추경을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지만 커지는 저성장 공포와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따른 수출 위기 등에 사실상 당장 추경을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한발 물러섰다는 분석이다. 다만 추경 규모와 용처를 두고 여야 이견이 있는 만큼 여야정 국정협의회를 통한 논의 과정에서 팽팽한 신경전이 예상된다.
권 원내대표는 ‘이재명’이라는 단어를 열여덟 번 언급할 정도로 이 대표의 입법 독주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스물아홉 번의 연쇄 탄핵, 스물세 번의 특검법 발의, 서른여덟 번의 재의요구권 유도, 셀 수도 없는 갑질 청문회 강행, 삭감 예산안 단독 통과 이 모두가 대한민국 건국 이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처음 있는 일”이라며 “단언컨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국정 혼란의 주범, 국가 위기의 유발자, 헌정 질서 파괴자는 바로 민주당 이재명 세력”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겨냥해 “국정 혼란의 목적은 오직 하나, 민주당의 아버지 이재명 대표의 방탄”이라며 “이 대표의 형이 확정되기 이전에 국정을 파국으로 몰아 조기 대선을 유도하고 이를 통해 대통령직을 차지하려는 정치적 모반”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 대표가 조기 대선을 겨냥해 ‘친기업·실용주의·친미’ 노선으로 급변침하는 데 대해서는 과거 정반대의 발언을 소환하며 맹공을 퍼부었다. 권 원내대표는 “재벌 체제 해체에 정치생명을 걸겠다” “기본소득은 필생에 이루고 싶은 정책” 등 이 대표의 과거 발언을 소개하면서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바꾼 말들은 언제든 강성 지지층이 원하는 포퓰리즘으로 회귀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 대표가 최근 한미 동맹을 강조하는 데 대해서도 “주한미군 철수도 각오해야 한다”고 한 과거 발언을 불러와 “조기 대선을 겨냥한 위장 전술이다. 카멜레온의 보호색이 성조기 무늬로 바뀌었다”고 일침을 가했다.
그러면서 권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입법을 밀어붙이는 노란봉투법과 국회증언감정법의 폐기와 여야가 합의한 민생 법안 처리를 촉구했다. 특히 반도체특별법과 관련해 “주 52시간 규제에 집착하는 민주당은 글로벌 스탠더드에서 뒤떨어진 정치 세력”이라며 2월 임시국회 처리를 재차 강조했다.
권 원내대표는 대통령과 의회의 권력을 분산하는 분권형 개헌과 승자 독식과 지역 편중의 선거구제 개편 필요성도 거론하며 개헌 논의를 제안했다. 아울러 모수·구조 개혁을 병행하는 연금 개혁을 위해 국회 차원의 연금개혁특위 구성과 의료 개혁에 대한 야당의 책임 있는 역할을 주문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 후 첫 교섭단체 대표 연설이었던 만큼 최근 정국 상황 관련해 “집권 여당으로서 책임을 깊이 통감한다”며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사의를 표하는 모습도 보였다.
민주당은 이날 연설을 “여당 포기 선언문”이라고 혹평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권 원내대표 연설이) 들을 만한 내용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내용이 없었다”며 “우리 민주당 얘기만 주로 하고 본인들 얘기를 많이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지역화폐와 같은) 좋은 정책은 특허권·저작권 없이 서로 민생과 경제를 위해서 사용해야 할 텐데 민주당 딱지가 많이 붙어 있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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