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과 정치인을 수사하는 ‘반부패 수사 1번지’ 서울중앙지검이 올 초 인사에서 이른바 특수 수사 인력을 대폭 줄인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 캐비닛에 쌓인 일반 형사사건 장기 미제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고 있어 심우정 검찰총장이 특단의 대책을 내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동시에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에 따른 조기 대선 가능성에 검찰이 ‘숨 고르기’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달 3일자로 시행된 검찰 인사에서 서울중앙지검의 4차장 산하 검사는 지난해 11월 대비 총 10명이 감소했다. 비율로 보면 같은 기간 23% 줄었다. 특히 기업 수사를 주로 하는 반부패수사1부는 같은 기간 11명에서 6명으로 사실상 부서가 ‘반토막’이 났다. 특히 기존 검사 5명이 나가고 신규 전입은 아예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4차장 산하는 대기업이나 정치인들의 부패 범죄 등 인지 사건을 주로 처리한다. 중앙지검의 일반 형사부는 통상 5~6명의 검사로 구성됐지만 4차장 산하 인지 부서는 10명 가까이 되는 대형 부서다.
반부패수사2부와 3부 모두 2명이 줄었다. 공정거래조사부도 1명이 감소했다. 대기업 수사가 주력인 4차장 산하 검사 인력이 20% 넘게 줄어든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반면 민생 범죄를 주로 담당하는 형사부 인력은 지난해 말과 비슷하게 유지되며 상대적으로 규모가 커졌다. 형사1~6부를 총괄하는 1차장 산하 검사 숫자는 지난해 11월 대비 같은 수준을 유지했다. 2·3차장 산하 검사 숫자는 각각 1명씩 줄었다.
서울중앙지검 인력 재배치가 형사부 중심으로 이뤄진 것은 서민 대상 장기 미제 사건이 계속 쌓이고 있기 때문으로 평가된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민생·경제 범죄 수사력 강화와 장기 미제 해결을 위해 형사부 인력을 더 강화하는 기조”라고 설명했다. 신규 검사를 수시로 충원할 수 없는 상황에서 형사부 수사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대기업·정치인에 대한 수사력을 다소 줄여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서울중앙지검의 형사부가 강화되고 인지 부서의 힘이 빠지는 것은 심 총장의 검찰 방향성과 궤를 같이한다는 분석이다. 심 총장은 지난해 9월 취임사부터 “형사부 인력과 조직을 대폭 강화하겠다”며 “개선 방안이 구호에 그치지 않게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검찰에는 매년 40만 건이 넘는 고소·고발이 접수된다. 법무부에 따르면 2023년 검사 1명이 하루 평균 배당 받는 사건 수는 7.6건이다. 2021년 6.1건에서 매년 증가 추세다. 검찰이 3개월 넘게 사건 처리를 못한 장기 미제 사건 수도 2023년 7827건으로 2017년과 비교하면 3배 가까이 증가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2021년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수사 지연이 계속됐다”며 “경찰에서 쌓인 사건이 한꺼번에 넘어오면서 장기 미제도 함께 늘어나는 추세”라고 했다. 이어 “윤 대통령 탄핵 심판에 따라 조기 대선도 예상되면서 새로운 기업·정치인 수사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지난해 12월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과 조상원 4차장검사, 최재훈 반부패수사2부 부장검사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로 이들의 직무가 정지된 것도 인지 부서 축소의 이유가 됐다는 분석이다. 특히 기업·정치인 수사를 총괄하는 4차장검사 탄핵소추에 따른 직무 정지로 2·3차장검사가 4차장 산하 부서 일을 나눠서 하는 만큼 사실상 기업 수사 기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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