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 전망에 대한 국내외 기관들의 눈높이가 속속 낮아지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1일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의 2.0%에서 1.6%로 대폭 낮췄다. 내수 부진 지속과 악화하는 글로벌 통상 여건을 반영한 결과다. KDI는 “통상 갈등이 격화하거나 정국 불안이 장기화하면 성장률이 1.6%보다 낮아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른 기관들의 예측도 비슷한 수준이다. 앞서 한국은행이 성장률 전망을 1.6~1.7%로 하향 조정했고 글로벌 투자은행(IB) 8곳도 평균 전망치를 1.6%까지 내린 상태다. 이미 실물 경제 곳곳에서는 위기 경보음이 울리고 있다. 15개월 연속 호조를 보이던 수출 증가율은 1월 -10.3%로 돌아선 데 이어 이달 들어서도 1~10일 기준 0.8%에 그쳤다. 지난해 제조업 취업자 수가 2년 연속 감소하는 등 고용 시장의 한파도 매섭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저성장을 일시적 현상으로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급격한 경기 위축은 지난해 말 비상계엄 사태에 따른 정국 혼란과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촉발한 관세 전쟁에서 비롯됐지만 그 저변에는 저출생·고령화와 생산성 저하 등 구조적 하방 압력이 작용하고 있다. KDI는 우리 경제의 기초 체력을 나타내는 잠재성장률이 이미 1%대로 떨어졌다고 분석했다. 글로벌 통상 갈등이 더 큰 불길로 번질 위험이 높아지는 가운데 정치권은 말로만 ‘경제·민생’을 외칠 뿐 저성장 탈출을 위한 개혁과 경제 살리기 입법을 뒷전으로 미루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1%대 저성장이 고착화하는 것은 물론 머지않은 미래에 ‘성장률 0%대’라는 암울한 전망이 현실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추락하는 성장률을 끌어올리려면 여야정(與野政)이 힘을 모아 구조 개혁과 초격차 기술 개발, 고급 인재 양성에 속도를 내야 한다. 노동·연금 개혁과 규제 혁파로 성장을 가로막는 구조적 요인들을 제거하고 주 52시간 근무제 완화 등을 포함한 반도체특별법 등 경제 입법을 서둘러 처리해 기업들이 뛸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표류하는 여야정 국정협의회를 조속히 가동해 정치적 교착 상태부터 해소하는 것이 급선무다. 정치 정상화를 발판으로 경제 체질 개선과 신성장 동력 육성을 위해 총력전을 펴야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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