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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다시보기] 왕의 지위를 포기한 신의 아름다움

■심상용 서울대학교미술관장

오노레 도미에 ‘삼등 열차’




빅토르 위고가 ‘레미제라블’을 발표했던 1862년, 오노레 도미에는 ‘삼등 열차’를 그렸다. 인류의 고통이 멈추지 않는 곳, 빵을 위해 자신을 팔아야 하는 여성, 가진 자의 편에 선 정부, 위고가 바꾸고 싶었던 세상의 모습이다. 레미제라블의 장 발장과 코제트와 팡틴을 도미에는 삼등 열차에 몸을 실은 가족에서 마주한다. 아이에게 모유를 수유하는 젊은 아낙과 기도하듯 두 손으로 바구니를 안고 있는 노부인, 그 옆에서 곤하게 잠든 손자, 왼쪽 창문으로 들어온 황혼 녘의 빛이 그들을 부드럽게 휘감는다. 그 뒤편 사람들의 표정에는 피로와 불안의 기색이 역력하다. 인간 삶의 비참함과 불완전함, 실망과 무력감으로 체념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삶을 치열하게 함축해냈다.

같은 주제로 ‘일등 열차’ ‘이등 열차’ ‘삼등 열차’ 세 점이 제작됐지만 미완의 ‘삼등 열차’가 모든 이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실존의 비참성이 초대하는 보편성과 공감 때문이다. 예술의 힘의 강력한 두 발원지다. 이 힘은 명예훈장이나 레드카펫, 팡파르가 울려 퍼지는 대통령궁에서 나오지 않는다. 남루한 행색과 변두리의 거처, 감자로 끼니를 때우기, 권력의 눈 밖에 난 것들에서 온다. 약자와 희생자의 편에 설 때 눈을 뜨고 빛을 발하는, 아름다움의 법칙 때문이다. 사람들은 보석 장식된 외투를 두른 지체 높은 사람이나 성공한 사업가를 부러워하지만 오래 기억하지 않는다. 반면 인생을 기꺼이 시련과 맞바꾼 가난한 시인이나 화가는 마음 판에 각인된다. 인간으로 사는 자체가 언제든 약자가 되고 상처받을 수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도미에 자신도 가난했다.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생계를 위해 석판화를 찍어야 했다. 신랄한 정치 풍자화로 6개월간 투옥되기도 했다. 시몬 베유의 말이 떠오른다. “이 세상은 물질의 법칙과 이성적 인간의 자율성으로 구성된다. 그곳은 신이 사라져버린 왕국이다. 왕의 지위를 포기한 신은 그 왕국에 거지로만 들어갈 수 있다.” 스스로 거지를 자처한 신만큼 예술을 대변하는 이야기는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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