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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맞고 지금은 틀리다' 30년 전 北의 180도 다른 모습  

'같은 민족끼리…장벽 왜 세우나' 기록으로 남아

통일부, 1984~1990년 남북회담 문서 공개

1990년 남북고위급회담 제6차 예비회담장의 풍경. 사진제공=통일부






#. “총리회담이라는 남측의 회담 명칭 제안은 나라와 나라 사이의 회담에서 사용되는 명칭이다. (중략)한 나라 안에서 같은 민족끼리 경제협력과 교류를 실현하기 위해 채택하는 합의 문건인 만큼 서명란에다 국호를 써넣을 필요는 없다.” - 1985년 11월 5차 남북경제회담

#. “나라 한복판을 가로지른 콘크리트 장벽은 민족분열과 북남대결의 상징이며 세계 어느 국경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인공적 차단물이다. (중략)지금과 같은 귀측의 폐쇄정책을 버려야 합니다.” - 1990년 1월 고위급회담 6차 예비회담



13일 통일부가 공개한 1984년 9월~1990년 7월 사이의 남북회담 문서에서 눈에 띄는 대목이다. 지난해 1월 ‘적대적 두 국가’를 선언하고 군사분계선(MDL) 이북에 콘크리트 방벽과 고압 전기선을 설치 중인 현재의 북한과는 180도 다른 태도다.



당시 북한은 적극적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주장하기도 했다. 1986년 12월 31일 최고인민회의 8기 1차 회의 당시 김일성 주석이 “조선민족을 멸살시키고도 남을 핵무기를 남조선에서 철수할 것”이라고 밝힌 것이 대표적이다. 북측은 “조선반도를 하루빨리 핵무기가 없고 전쟁위험이 없는 비핵지대 및 평화지대로 만들 것”을 “강력히 촉구”하기도 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 배치됐던 주한미군 전술핵은 지난 1991년 전량 한반도에서 철수했다. 반면 북한은 오히려 핵확산방지조약(NPT)를 탈퇴(1993년 3월)했고, 현재까지 총 6차례에 걸쳐 핵실험을 실시하며 대외 협상의 핵심 카드로 이용하고 있다.

판문각에서 남북국회회담 제1차 예비접촉을 취재 중인 기자들. 사진제공=통일부


이러한 내용이 담긴 남북회담 문서 공개는 전국 지정 장소와 온라인으로 열람할 수 있다. 현재 통일부 남북관계관리단·국립통일교육원·통일부 북한자료센터·국회도서관 내 남북회담 문서 열람실 뿐만 아니라 목포 통일플러스센터, 국회부산도서관에서 열람할 수 있으며 온라인으로는 남북관계관리단 홈페이지에서 간편인증을 거쳐 확인 가능하다.

통일부는 지난 2022년 처음으로 남북회담 문서를 공개한 이후 총 6차례에 걸쳐 시기별 자료를 공개해 왔다. 이번에 공개되는 문서에서는 분단 이후 최초로 개최된 남북경제회담 및 국회회담 예비접촉 등 1980년대 중후반 남북간 대화·접촉의 실상, 1990년대 남북고위급회담 개최를 위한 남북 간 예비회담의 기록 등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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