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 산업은 지금이 한계가 아니라 지금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스타트 포인트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철강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고 관련 기술도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탄소 중립 달성이라는 제2의 변환기를 맞아 기술 개발에 적극 투자해야 할 때입니다.”
권오준 전 포스코그룹 회장은 13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에서 열린 토크 콘서트 ‘과학, 시대를 잇다’ 강연에서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25% 철강 관세 부과와 중국산 저가 철강 덤핑이라는 파고에 직면한 한국 철강 업계의 대응 전략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다음 달 12일부터 모든 대미 수출 철강·알루미늄에 25% 관세가 적용됨에 따라 국내 철강 업계는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내외적인 환경 변화에 대해 권 전 회장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업계에 적극적인 투자를 촉구했다. 과거 일본을 넘어서 한국이 철강 기술 강국으로 올라섰던 것처럼 새로운 경쟁자들이 등장하고 가격 측면에서 불리해지는 상황이 계속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무엇보다 기술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신흥 철강 기술 강국인 중국과 인도·나이지리아 등을 언급하며 “앞으로는 기존 철강 생산 국가들의 수요가 줄어들 수밖에 없고 설비 노후화로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기존 생산 품목의 규모를 줄이는 대신 고부가가치 상품에 주력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권 전 회장은 국내 철강 업계가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한 기술 개발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앞으로 철이 생산되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어떻게 줄일 수 있느냐가 핵심”이라며 “과학자들이 많은 연구를 하고 있어서 곧 해결책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권 전 회장은 포스코가 자체 개발한 수소환원제철 기술 ‘하이렉스(HyREX)’를 소개하며 “탄소 중립 시기에 포스코를 포함한 국내 철강 업체들이 비약적인 발전을 하지 않을까 하는 낙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전했다. 하이렉스는 과거 용광로에서 쇳물을 생산하는 방식이 아니라 수소를 이용한 철 생산 기술이다. 철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배출되지 않아 탄소 배출 감축을 위한 친환경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권 전 회장은 탄소 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핵심 과제로 원자력발전소를 통한 전력 확보를 꼽았다. 수소환원제철 기술을 위해서는 풍력과 태양열 등 신재생에너지를 사용해야 하는데 원전을 통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수소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탄소 중립 시대에 4~10GW(기가와트)의 전력을 확보하기 위해 원전 확보가 필수적”이라며 “원전 민영화를 통해 철강 회사가 원전을 소유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철강 업계의 신사업 투자도 주문했다. 권 전 회장은 포스코그룹 기술총괄 사장으로 재직할 당시 2차전지 핵심 소재인 양극재의 원료로 쓰이는 리튬 생산에 나선 일화를 소개했다. 포스코는 당시 아르헨티나 염호에서 리튬을 추출하는 공정을 시작했고, 권 전 회장이 그룹 수장에 오르면서 본격적으로 투자에 나서 리튬 직접 추출 기술을 상용화하는 데 성공해 미래 먹거리 사업으로 키워냈다. 그는 “어떤 회사든지 현재의 경영 방식으로는 미래를 담보할 수 없기 때문에 철강 업계 역시 다양한 신사업에 투자해 미래 먹거리를 발굴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했다.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피츠버그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권 전 회장은 1986년 포스코에 입사한 후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의 주요 보직을 두루 역임한 후 최고기술책임자(CTO)를 거쳐 최고경영자가 됐다. 엔지니어 출신으로서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는 이공계 기피 현상에 대해 권 전 회장은 국가적 차원의 지원을 통해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국내 철강 업계는 젊은 사람들이 기피하고 있는데, 오히려 미국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철강업으로 모이고 있다”며 “그동안 철강 생산이 대규모 제철소에서 이뤄졌다면 탄소 중립 시대에는 소규모 회사에서도 비즈니스가 된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젊은이들이 철강업을 혁신하는 사업을 하고 국가 또한 지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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