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 때 지급하기로 한 반도체 보조금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보조금 지급 지연이나 조정 가능성이 불거지면서 미국 반도체지원법(칩스법)을 발판 삼아 대규모 미국 투자에 나섰던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대미 투자와 사업 계획을 둘러싼 불확실성에 직면하게 됐다.
13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자국 내 반도체 시설 건립 프로젝트와 관련해 각 업체에 지급하기로 확정한 보조금의 재협상을 추진 중이다. 로이터는 트럼프 행정부의 기조와 맞지 않는 조항이 보조금 지급 계약에 포함된 점, 인텔 등 보조금을 받은 기업이 이후 중국 투자에 나서고 있는 점 등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미 일부 기업은 협상 재검토를 통보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4억 600만 달러의 보조금을 받기로 한 대만의 글로벌웨이퍼사는 “칩스 담당 조직에서 일부 조항이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부합하지 않고 당국이 현재 모든 보조금 협약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고 말했다.
보조금 지연이나 삭감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관련 국내 기업들도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과 테일러시에서 진행 중인 370억 달러(약 53조 원) 규모의 투자 프로젝트와 관련해 지난해 12월 47억 4500만 달러의 보조금을 확정받았다. SKC의 유리 기판 자회사 앱솔릭스(7500만 달러)와 SK하이닉스(4억 5800만 달러)도 지급이 결정됐다.
국내외 반도체 업계에서는 미국이 현지 생산 확대를 유도하기 위해 보조금을 무기로 들고 나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당장 인공지능(AI) 혁명에 발맞추기 위해 한국과 대만 첨단 반도체를 대규모로 수입해야 하는 상황에서 다른 품목처럼 관세를 부과할 경우 미국 기업의 채산성만 낮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반도체 대부분이 대만에서, 약간은 한국에서 생산된다”며 “우리는 그 회사들이 우리나라에 오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이 대만의 반도체를 미국으로 되찾아오고 싶다고 발언한 가운데 대만 정부는 대미 투자 확대 방침을 밝혔다. 라이칭더 대만 총통은 이날 고위급 국가안전회의(NSC) 후 기자회견에서 양국 간 무역 균형을 촉진하겠다고 말했다. 인공지능(AI)과 첨단 반도체 분야에서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국방 예산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3% 이상으로 증액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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