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이 회생 이후에도 기존 경영자의 경영권을 그대로 유지하는 사례가 2006년 채무자회생법 시행 이후 처음으로 나왔다. 기존 경영자가 경영권을 상실할 수 있다는 기존 관념을 깨뜨렸다는 점에서 향후 비슷한 사례가 더 늘 것으로 전망된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회생법원 제16부(나상훈 부장판사)는 전날 온라인 기반 광고 및 마케팅 사업을 하는 A 기업이 제출한 회생 계획안을 인가하는 결정을 내렸다.
A 기업은 2020년 코로나19 이후 매출 감소와 저가 수주 경쟁으로 수익성이 악화됐고, 금융 이자 등 고정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회생을 신청했다. A 기업은 회생 계획안 심리 및 가결을 위한 관계인 집회에서 회생 채권자 78.23%의 동의를 얻어 가결 요건을 충족했다.
회생 신청 당시 A 기업의 대표자는 발행 주식의 93.3%를 보유하고 있었다. 상대적 지분비율법에 따르면 A 기업 대표자의 지분은 회생 이후 50% 미만으로 감소돼 인가 이후 지배권을 상실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었다. 상대적 지분비율법은 회생 계획안상 기존 주주의 최종 지분율이 회생 채권자에 대한 현가 변제율보다 낮아야만 인가 요건을 갖춘 것으로 보는 실무적 방법이다.
하지만 이번 사례에서는 주식병합을 통해 최종적으로 기존 경영자가 회생 이후에도 50%를 넘는 지분을 보유해 경영권을 유지하는 책임경영을 골자로 하는 회생 계획안이 제출됐다. 다만 회생 채권 중 현금 변제 부분 50% 미만을 제외한 나머지 채권액에 대해서는 출자 전환을 했다. 재판부는 기존 실무 관행인 상대적 지분비율법의 대안으로 가칭 ‘종합적 고려법’을 시범적으로 적용해 기존 경영자가 회생 이후에도 경영권을 그대로 유지하게 했다.
기존의 관념을 깨는 사례가 등장하면서 경영자는 회생절차를 통해 경영권을 상실하지 않고 새출발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 이는 이달 10일 새로 취임한 정준영 서울회생법원장의 지향점과 일치하기도 한다. 정 법원장은 취임사에서 “새출발을 응원하는 것이 회생법원의 역할이고, 특히 작은 혁신 기업에 재기의 기회를 주는 간이회생제도는 너무나 중요한 제도”라고 강조했다.
서울회생법원 관계자는 “재정적 어려움에 처한 기업가가 회생절차를 주저하게 되는 여러 사유 중 하나가 기존 경영자의 지배권 상실이었다”며 “이 부분을 해소할 수 있는 좋은 실무 사례가 나왔고, 앞으로 소규모 기업이 회생 이후에도 경영권을 그대로 유지하는 사례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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