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머크(MSD)사의 ‘키트루다(성분명 펨브롤리주맙)’는 글로벌 의약품 중 매출 1위를 꼽을 때 절대 빠지지 않는다. 환자의 면역세포를 활성화함으로서 스스로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돕는 방식의 면역항암제 중 대표격으로 지난해 거둬들인 매출만 294억7000만 달러(약 42조 7900억 원)에 달한다. 키트루다는 2014년 9월 미국 식품의약국(FDA), 2015년 7월 유럽의약청(EMA)을 통해 허가 받았으며 현재 각각 31개와 39개의 적응증에 대해 승인된 상태다.
국내에서는 최근 키트루다를 투약했을 때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적응증의 범위를 확대하기 위한 첫 관문을 통과했다. 하지만 국내에서 키트루다가 처음 건보 적용을 받기까지 오랜 기간이 걸렸음을 고려하면 이번에도 차후 절차를 거쳐 키트루다의 건보 적용 확대가 이뤄지기까지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은 지난 12일 암질환심의위원회에서 키트루다의 건보 급여 기준 확대 여부를 심의한 결과 총 11개 적응증에 대한 급여 기준을 설정하기로 의결했다. 암질심은 암 등 중증환자에게 투여하는 약제에 대해 요양급여 적용 기준 및 방법을 심의하는 위원회로 중증질환 신약의 건보 적용을 위한 첫 관문이다. 이번에 암질심 심의를 통과한 적응증은 국소진행성 혹은 전이성 식도암, 진행성 자궁내막암, 전이성 직장암, 국소 재발생 또는 전이성 삼중음성유방암 등이다.
키트루다가 처음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은 건 지난 2015년이다. 최초 허가 받은 적응증은 수술이 불가능하거나 전이성인 흑색종으로, 이후 적응증이 확대돼 16개 암에서 총 34개의 적응증이 승인됐다. 하지만 이 중 건보 적용을 받는 적응증은 극히 제한적이다. 현재는 비소세포폐암, 호지킨림프종, 흑색종, 요로상피암 4개 암종에서 7개 적응증만 건보가 적용된다. 영국(19개), 캐나다(18개), 호주(14개)와 비교했을 때 현저히 낮다. 키트루다의 급여 확대 논의는 지난 2023년 제약사 측의 요청으로 13개 적응증에 대해 논의가 시작됐으며, 지난해에는 4개 적응증이 추가돼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까지 열린 총 5차례의 암질환심의위원회 회의에서 재논의 결정이 반복되며 번번이 통과되지 못했다. 이런 탓에 환자단체를 중심으로 건보 급여 적용 확대가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지금도 키트루다를 투약하고 싶은 환자들은 비급여로 이용하면 되지만 연간 부담해야 할 비용이 7000만원에서 많게는 1억원에 이른다고 전해진다. 약값 부담에 치료를 못 받는 환자들도 적지 않다.
키트루다는 처음 건보 급여 대상이 되기까지도 순탄하지 않았다. 2017년 비소세포폐암에 대한 2차 이상 치료에 대해 급여화됐고, 1차 치료에서부터 치료효과가 나타나면서 급여 확대 시도가 이뤄졌지만 10회에 걸친 시도 끝에 2022년 3월 1차 치료제로도 건보 혜택을 받게 됐다. 정부와 제약사 간 재정분담에 대한 의견 차이로 협의가 길어졌기 때문이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환자들은 적절한 치료 기회를 놓쳤고,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가 악화하거나 치료 가능성을 상실했다”며 “환자들의 피해는 되돌릴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키트루다는 이번 암질심 통과 이후 심평원 약제급여평가위원회를 통과하면 국민건강보험공단과의 약가 협상,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건보를 추가로 적용 받게 된다. 환자단체연합회는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 정부와 제약사는 재정 분담 문제를 이유로 키트루다 급여 확대를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된다”고 촉구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