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집권 여당 내에서 이시바 시게루 총리의 ‘전후 80년 담화’ 반대론이 강하게 확산되고 있다. 자민당 보수파들은 아베 신조 전 총리가 발표한 70년 담화를 마지막으로 ‘사죄 외교’를 마무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연립여당인 공명당은 담화 발표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16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오는 8월 15일 종전기념일이 6개월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이시바 총리의 전후 80년 담화 발표 여부가 정치권의 주요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도쿄도 의회 선거와 참의원 선거라는 대형 선거를 앞두고 자민당 내 보수계 의원들 사이에서는 새로운 담화 발표에 대한 반대 목소리에 더욱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일본 총리는 전후 주요 시기마다 담화를 발표해 왔다.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가 전후 50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60년, 아베 신조 총리가 70년 되는 해에 각각 담화를 냈다. 이 중 아베 담화는 과거 담화의 핵심 키워드였던 ‘식민지 지배’, ‘침략’, ‘반성’, ‘사죄’라는 표현을 포함하면서도 “전쟁과 무관한 우리 자손, 그 이후 세대의 아이들에게 사죄를 계속하는 숙명을 짊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해 한국과 중국의 반발을 샀다.
이시바 총리는 현재까지 담화 발표 여부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도 지난 1월 기자회견에서 “지금까지의 경위를 고려하면서 다양한 관점에서 검토하겠다”고만 언급했을 뿐이다.
자민당 보수계 의원들 사이에서는 80년 담화가 불필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보수 진영 인사이자 지난해 9월 당 총재 선거에서 이시바 총리와 경쟁했던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전보장상은 “발표할 필요가 전혀 없다”며 “그것을 위해(80년 담화를 발표하지 않기 위해) 70년 담화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닛케이는 보수 진영이 “이시바 총리가 80년 담화를 발표할 경우 아베 담화의 기조가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이들이 걱정하는 또 다른 하나는 바로 선거다. 전후 담화가 ‘사죄 외교’로 인식돼 온 만큼 80년 담화 발표 계획이 자칫 ‘저자세’로 받아들여져 7월 예정된 도쿄도의회 선거와 참의원 선거라는 대형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의원은 “(담화를) 10년마다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여당이 약한 상황에서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토로했다. 총리가 진보적 색채가 강한 담화를 발표할 경우 보수층이 이탈할 수 있다는 불안감 역시 존재한다는 분석이다.
반면 연립여당인 공명당은 80년 담화 발표에 긍정적이다. 공명당의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이와 관련해 지난달 22일 “발표해야 한다”고 밝혔고, 이달 들어서는 “피폭 80년이므로 핵 폐기를 향한 80년 담화라는 취지로 (발표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라고 의도를 설명했다. 히로시마가 지역구인 사이토 대표는 피폭자를 향한 담화를 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편, 이시바 총리는 지난달 31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왜 전쟁을 시작했는지, 왜 피할 수 없었는지 검증하는 것은 80년을 맞는 올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1월 참석한 심포지엄에서도 “올해는 패전 후 80년”이라고 말한 뒤 “굳이 ‘패전’이라고 말하는 것은 종전이라고 하면 사태의 본질을 오해하게 된다”며 “지금을 놓치면 전쟁에 대한 검증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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