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글로벌 관세 전쟁 등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미국 빅테크 등 우량 기업 회사채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MS) 등 고신용 기업이 발행한 회사채의 국채 대비 스프레드(가산금리)가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이례적인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투자자들이 정부보다 기업의 신용도를 더 높게 평가한다는 의미다.
16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애플이 발행한 2027년 9월 만기 회사채 스프레드가 이달 7일 -0.043%포인트까지 하락했다. 노무라증권의 반 유타카 채권 수석애널리스트는 “2년물 국채금리가 5%를 밑돈 2006년 이후 회사채의 국채 대비 스프레드가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통상 기업이 발행하는 채권(회사채)은 기업의 신용위험을 반영해 정부가 발행하는 것(국채)보다 높은 금리를 제시한다. 미 신용평가 무디스에서 Aaa·Aa1의 높은 등급을 매긴 회사채 잔액은 2700억 달러 규모로 미국 국채(28조 달러)의 100분의 1 수준이다. 국채가 발행량이 많고 유동성이 좋아 더 안전한 자산으로 인식돼 스프레드가 마이너스가 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나 지금은 기업들의 채권금리가 미국 국채금리보다 더 낮아지는(가치 상승) 이례적인 현상이 포착되고 있다. 애플 외에도 엔비디아·알파벳 등의 2026~2027년 만기 사채에서 마이너스 스프레드가 잇따르고 있다. ‘정부보다 기업 쪽의 리스크가 덜하다’는 투자자들의 인식이 돈의 흐름에 반영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로 미국의 시장조사 업체 EPFR에 따르면 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한 지난해 11월 6일 이후 미국 회사채 펀드에 119억 달러의 자금이 유입되는 동안 미국 국채 펀드에는 21억 달러만 들어왔다. 미국 운용 회사 더블라인캐피털은 “궁극의 안전자산이었던 미국 국채는 이제 더 이상 견고하지 않으며 높은 등급의 회사채에 주목해야 할 때”라고 분석했다.
이러한 현상에는 미국 기업과 연방정부의 상반된 재무 상황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금융권을 제외한 미국 기업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비율은 47%로 9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반면 미국 연방정부의 부채비율은 106%로 4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우량 기업들은 재무 건전성을 확보해가는 반면 미 정부의 재정 상황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으로 커지는 불확실성은 미 국채의 지위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전 세계를 향한 고관세 공격에 미국에서도 인플레이션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