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품 선진국인 미국과 유럽은 원료의약품의 해외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도입하고 있다. 미국은 2028년까지 원료의약품의 25%를 자국에서 생산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고 유럽연합(EU)은 ‘핵심의약품법’ 제정을 준비하고 있다. 자국 내 원료의약품 생산을 확대해 코로나19 팬데믹 때 같은 공급 부족 사태를 막겠다는 것이다.
16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미국 백악관은 지난해 ‘담대한 목표: 5년 이내에 모든 저분자 원료의약품의 25%를 미국으로 리쇼어링’ 보고서를 제출받았다. 2028년까지 원료의약품의 25%를 미국에서 생산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보고서는 이를 위해 △유휴 제조 시설을 활용하기 위한 공공 인센티브 △제네릭 의약품 리쇼어링에 필요한 ‘메이드 인 아메리카’ 인센티브 등 재정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원료의약품 국내 생산을 늘리려면 정부가 직접 나서 강력한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이 원료의약품 국산화율을 25%까지 끌어올리려고 하는 것은 무역 갈등에 따른 의약품 부족과 의약품 무기화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미국에서 소비되는 의약품의 약 90%가 제네릭(복제약)이지만 제네릭 원료의약품의 약 80%는 중국이나 인도 등에서 수입하고 있다. 실제 중국과 인도 공장에서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미국 내 어린이용 감기약, 항생제 등 의약품 부족 사태가 일어났다. 이에 미국 정부는 제약사들에 원료의약품 공급 중지 또는 중단 발생 시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의무적으로 보고하도록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실시간으로 공급 중단을 모니터링해 원료의약품 공급 차질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유럽연합(EU)은 원료의약품 인센티브가 핵심인 ‘핵심의약품법’ 제정을 준비하고 있다. 유럽약물연합은 핵심의약품법에 담을 주요 과제로 △유럽 위원회에서 핵심 의약품 및 원료의약품 제조 자금 지원 △제네릭 가격 책정 문제 해결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기술 개선 지원 등을 법에 반영해달라고 요구한 상태다. 이와 함께 유럽의약품청과 유럽 의약품안전관리기구는 의약품 공급 부족, 안전 조정 그룹을 통해 공급 예측 모니터링, 제약사의 공급 업체 다각화 권유, 의약품 비축 등을 시행할 계획이다.
사실 유럽은 중국과 인도에서 수입하는 원료의약품이 각각 8.0%, 3.4%에 불과하다. 유럽 내 제조 비율이 51.5%에 달할 정도로 자급율이 높다. 주로 헝가리·이탈리아에서 원료의약품을 생산해 EU 회원국들에게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시스템을 갖춘 덕분이다. 그런데도 이 같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코로나19 팬데믹 때 일부 국가에서 발생한 의약품 부족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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