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는 사회적 약자다. 1998년 발생한 7세 영훈이 아동학대 사망 사건은 당시 우리 사회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이 사건은 아동복지법에 근거한 아동 보호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계기가 됐다. 아동 보호 서비스는 아동학대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을 높였지만 여전히 우리 주변에는 아동에게 위험한 환경과 상황이 많이 있다. 이 때문에 관련 사건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 5년간 한 해 평균 아동학대 사망자가 43명에 이른다. 지난주만 해도 부모나 교사에 의해 사망한 아동이 2명이나 된다.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아동 살해 사건은 언급조차 미안하고 민망하다. 도무지 믿기지가 않는다. 부모와 살던 2세 여아 사망 사건 역시 잔혹하기는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아동 사망 사건은 위기 개입 시점을 놓쳐서 발생한다. 조사를 더 해봐야 알겠지만 두 사건 모두에서 위기 개입의 취약성이 드러났고 위기에 즉각 반응하는 제도가 설계돼야 할 필요성을 보여 준다. 현재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민감한 위기 개입이 필요했던 여러 순간이 확인되고 있다. 교사의 폭력적인 언행, 학교 내 시설물 사용, 등하교 시 보호, 다수의 양육 위험 요소를 가진 환경에서 살고 있는 영아의 어린이집 결석 등의 순간이 그렇다.
이 사건은 아동을 돌보는 어른들에 대한 특별한 도움과 지원의 필요성도 재확인해주고 있다. 어른의 우울 등 정신건강, 경계선상 학습 장애, 알코올과 약물 등 각종의 중독, 빈곤 상태 등은 양육 위기를 부르는 주 위험 요인이다. 부모나 교사 등이 가지고 있는 위험 요소는 본연의 역할을 약화시키고 아동을 위험에 빠뜨릴 수가 있다.
절차 중심의 관료적인 아동 보호 서비스가 갖는 한계도 이번 사건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제도 운용의 경직성은 위험 대처 과정에서 사각지대를 발생시킨다. 위기 판단과 위기 개입의 민감성 및 즉시성이 상당히 취약하다. 아동 보호 서비스 과정에서 규정 준수의 맥락을 따르다 보면 위기의 순간을 놓칠 수가 있다. 이번 초등학교 아동 사망 사건에서도 규정에 따른 절차가 진행됐으나 규정의 내재적 한계 때문에 더 이상의 위험 상황을 인지하거나 대처하기가 어려웠다. 영국에서 발생한 빅토리아 크림비 사건, 어린 아이를 방치해 사망하게 했던 이른바 베이비 P 사건에 대한 분석 보고서는 위기 개입 시점을 반복해서 놓치도록 설계된 관료적인 아동 보호 서비스 절차가 사건 발생의 주요인이라고 결론지었다.
사건은 언제나 제도의 허점을 파고 든다. 아동은 그 어떤 이유에서도 범죄 피해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 시급성이 빚은 조급함과 재원·인력 등의 한계 때문에 이번에도 느슨하고 관대하게, 그리고 어른 중심의 시각에서 정책과 제도가 보완된다면 아동의 안전을 위협하는 환경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아동의 입장에서 아동의 안전을 도모하는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차제에 우리나라 아동 보호 서비스가 학대에 초점을 맞춘 협소한 관점에서 벗어나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모든 아동에게 안전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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